태평양전쟁 시기 태국-일본 동맹관계와 태국의 친일 협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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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6-12 21:28 조회308회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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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의 과정에서 미얀마와 말레이 반도로 진격하려던 일본군은 타이 영토의 통과뿐만 아니라 태국을 동남아시아에서의 전쟁 수행을 위한 동맹국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41년 12월 7일에 타이 정부에게 타이 영토의 사용 허가에 대한 요청과 더불어 양국간 군사동맹의 체결과 미국 및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구하고, 바로 그 다음날 군대를 태국에 상륙시켰다. 일본군과 태국군 사이에 처음 몇 시간동안 교전이 있었으나, 태국의 피분송크람(Phibunsongkhram) 정부는 곧 일본군에게 타이 영토의 통과를 허락하고 일본군에 대한 모든 대항을 중지했다. 태국은 그 후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고 영국의 전함 두 척을 침몰시키는 등 전쟁의 초기 단계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린 일본과 동맹을 맺었으며 1942년 1월에는 영국과 미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Charnvit 1974: 53-54; Nuntana 외 1978: 60-72).
태국의 역사교과서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타이인 역사학자들은 일본과 동맹관계에 있었던 태국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1941년 말 일본군이 타이 영토에 들어온 것을 “북(buk)” 즉 ‘침입’ 내지는 “북룩(buk ruk)” 즉 ‘침공’ 등으로 표현하는 타이인들이 있는 것처럼(Sombun 1983: 604; Khlong 2000; Suphot 2003: 159), 일본군의 태국 진출은 대부분의 타이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군의 태국 침공과 주둔은 태국을 경유하여 말라야와 미얀마를 공격한다는 전략을 포함하여 동남아시아 전체에 대한 침략과 정복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태국에 대한 실질적인 점령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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