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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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9-11 23:12 조회25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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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면서
제1장 바다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보다
제2장 삼국 및 신라시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교류
제3장 고려 시대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 이주와 정착
제4장 14세기 말 한국과 태국의 교류
제5장 14세기 말-15세기 초 한국과 인도네시아 자와 섬의 접촉
제6장 16세기 말 임진왜란시 태국의 참전 제안과 실용주의 외교
제7장 15-19세기 한국과 베트남의 접촉과 교류
참고 문헌
사진 및 지도 출처
이 책은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교류 역사를 밝히기 위해 써진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삼국-신라 시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및 인도와의 교류, 특히 7-8세기 혜초를 위시한 신라 불승들이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을 경유하여 인도로 여행한 것. 고려 시대 동남아시아 사람이 우리나라에 온 것, 특히 12-14세기 베트남 사람들이 고려에 이주하여 가문을 세웠다는 이야기.
14세기 말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에서 사신임을 자처하는 무역 상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온 것에 대한 답례로 태조 이성계가 태국으로 사신을 파견했지만, 이 사신이 태국 국왕을 만나지는 못했다는 것. 14세기 말-15세기 초 인도네시아 자와 섬의 마자파힛 왕국에서 사신임을 자처하는 무역 상인이 조선을 방문하여 조선의 무역 시장에 진출하려 했다는 것. 그러나 조선과 태국 및 자와 섬 간의 무역 관계는 번번이 선박을 습격하여 화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한 왜구의 위험 때문에 그리고 해외무역에 대한 조선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 때문에 발전되지 못했다는 것.
16세기 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중국은 류큐(현 오키나와)와 태국의 병력을 동원하여 일본을 토벌토록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태국은 중국 정부에게 자신이 해군을 출동하여 일본을 배후에서 공격하겠다고 제안했는데, 태국이 임진왜란에 실제 참전하지 않았지만, 중국 정부에게 그러한 제안을 한 것은 동아시아에서의 무역에 대한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는 것.
17세기 초 조선에 온 베트남 왕족과 상인들이 제주도 관리들에게 살해된 것.
17세기 초 일본에 잡혀간 조선인 선비가 일본 상인을 따라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의 문화와 사회를 관찰한 것.
17세기 말 제주도 주민 수십 명이 표류하여 베트남에 갔다가 베트남 사람들의 호의로 고향에 무사히 돌아온 이야기. 특히 표류인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데 있어서 베트남은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인도적으로 행했다는 것.
15세기-19세기 초 베트남 사신과 조선의 사신이 중국의 수도에서 만나 시문으로 교류한 이야기. 특히 16세기 말 지봉 이수광과 풍칵코안 간의 교류를 통해 이수광의 시문이 베트남 선비 사회에 널리 퍼진 것.
끝으로 『조선왕조실록』이 1801년 제주도에 표류해온 다섯 명의 외국인을 ‘여송국’ 즉 필리핀 루손 섬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사실은 마카오에서 온 포르투갈 사람이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