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대한 외환 및 경제위기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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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05 21:46 조회1,70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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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아온 라오스는 1997년에 아세안에 가입하는 등 시장경제체제로의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해 왔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의 금융위기, 특히 태국 바트(Baht)의 추락으로 라오스의 경제는 큰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아시아의 외환 및 금융 위기의 영향은 우선 라오스 화폐인 낍(Kip)의 가치가 추락한 것에서 나타났다. 수년 전부터 태국의 바트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낍은 추락하는 바트의 운명을 함께 나누어, 1997년초만 하더라도 1 US달러당 약 1,000낍이었던 것이 그해 7월에 1,600, 11월말에는 1,865, 1998년 3월초에는 2,418, 10월에는 4,190낍까지 떨어졌다.
낍의 환율이 추락한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낍이 바트에 너무 의존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라오스 정부가 최근 2,000낍과 5,000낍의 두 가지 새로운 지폐를 발행한 것도 화폐가치의 추락에 기여했다고 보여진다. 한편 라오스 중앙은행 총재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처럼 국제적인 외환투기를 그 주범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시해야 할 것은 그동안 라오스 경제가 너무 오랫동안 외자도입에 의존한 거품경제의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낍의 추락폭이 태국 바트보다 훨씬 심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낍의 방어력이 바트보다 약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에다가 태국의 경우 환율의 조정을 위해 IMF로부터 수억 달러에 달하는 차관을 얻을 수 있었으나, 서방세계의 라오스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환율이 추락하기 시작했을 때, 라오스 정부는 한 때 환율을 고정시키고자 시도했으며 특히 국내시장에서 종래 바트나 US달러로도 지불할 수 있던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것은 오히려 외환의 암시장 거래를 활성화시킨 역효과를 가져왔다.
낍의 환율이 추락한 결과, 늦어도 1997년 중엽부터 US달러로 지불하는 모든 수입품들의 가격이 급속도로 올랐으며, 이것은 국내 물가의 폭등을 가져왔다. 이미 1997년말 평균 20%까지 물가가 뛰었으며, 쌀 등 기본생필품들은 지역에 따라 심지어 50-130%까지 오르기도 했다. 낍과 바트의 신용이 상실되었고 물가가 극히 불안한 상황에서 라오스 국민은 그사이 금이나 US달러 등 안전한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것은 암시장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라오스 경제는 여기에다가 외국 자본가들의 투자격감, 외환보유고의 감소, 태국과의 무역량 축소 등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태국으로부터의 차관이 어렵게 됨으로써 이미 벌여놓은 여러 사업들의 추진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라오스가 차후 전력의 수출을 통한 확실한 수입원으로 기대하고 있는 남턴(Nam Theun) 제2댐의 공사를 들 수 있다.
아시아의 외환 및 금융 위기는 사실 시간적으로 라오스에게 매우 불리한 순간에 찾아 왔다. 1997년 6월 바트의 위기가 이미 터진 후, 7월 23일 라오스는 아세안의 회원국이 되어 이제는 아시아 주위 국가들의 시장경제적 운명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1998년 1월부터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의 관세인하가 점진적으로 라오스에게도 적용되는 등, 차후 AFTA의 회원국으로서 라오스는 농업, 공업, 관광업 등 모든 경제분야에서 아세안 그리고 나아가 세계시장의 직접적인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에 앞서 1997년 12월 24일에는 태국과 라오스간의 이중관세 폐지협정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밖에 1998년 2월 19일 라오스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을 신청했다. 달리 말하면,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맞이한 라오스 정부로서도 현재 개방정책의 노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