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종교와 신앙에 대한 정부의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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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1-19 22:56 조회1,777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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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신앙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통제>
1. 베트남 5대 종교단체들의 신자수
베트남 정부는 1980년대 중엽 불교에 대해 매우 관용적인 정책을 펼쳐 왔다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베트남 인구의 약 85% 정도가 불교신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프로파간다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유불선 및 귀신신앙을 모두 함께 숭배하는 혼합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포괄적 의미의 불교신자들이 베트남 인구의 약 ¾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식 불교신자라고 칭할 수 있는 자들은 그 중 30%에 불과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최근 베트남 정부의 종교청은 베트남의 대승불교 신자들은 대부분 지배적 민족인 낀(Kinh)족이며 그 숫자는 700만 정도라고 본다. 메콩강 델타 지역에는 소승불교를 믿는 크메르족도 있는데, 그 수는 70만에서 100만 사이라고 본다.
가톨릭의 교세는 Nazarene World Mission Society의 1997년 통계에 따르면 675만명이었다. 미국무성은 8,000만 인구의 8%로 잡고 있다. 1992년 1월 6일자 태국의 일간지 The Nation의 통계에 의하면, 인구의 약 10%가 가톨릭 신자였다. 개신교의 경우, 1975년 통일 당시 남부에만 약 20만명의 신자가 있었다. 20년 이상 공산 치하에 있었던 북부의 개신교는 그 교세가 극히 미약했다고 본다. 베트남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987년 개신교 신자의 숫자는 40만명으로 추산될 수 있다. 1999년 9월초에 발표된 미국무성의 베트남 종교에 대한 보고에 따르면, 현재 약 60만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있다.
1926년 창립된 까오다이(Cao Dai 高臺)교는 1931년에 50만명의 추종자를 거느린 종교로 성장했으며 1960년대 중엽에는 100만에서 200만 사이의 신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까오다이의 교세는 1975년 공산화 이후 현저히 줄어들었다가 최근 다시 급성장하고 있다. 까오다이측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에 7-800만명의 추종자들이 있고 아시아, 미대륙, 유럽 등지에도 3만명의 회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다분히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종교청의 추산으로는 약 110만명, 비정부기구들은 2-300만명이라고 보고 있다. 1939년 창건되어 붓다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조상신과 민족적 영웅에 대한 숭배를 강조하는 호아하오(Hoa Hao 和好) 불교는 창건 일년만에 10만명의 추종자를 획득했다. 1960년대 중엽에 약 200만의 신도를 확보했던 호아하오는 1975년 이후 공산당 정부의 탄압을 받아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최근 종교들의 전반적 부흥추세 속에서 다시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 종교청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약 130만명의 호아하오 추종자가 있다. 그러나 비정부기구들의 추정은 200만명까지 이른다.
2. 신앙의 자유 문제
최근 하노이 정부는 유엔의 인권보고서에서 종교의 자유를 여전히 제한하고 있다고 비난받았다. 이 보고서는 1998년 10월 베트남에서의 신앙과 종교의 실제에 대해 살펴볼 기회를 가졌던 유엔의 압델파타 아모르(Abdelfattah Amor)에 의해 작성되었다. 1999년 3월 제네바에서 발표된 이 보고서에서 아모르는 베트남 정부의 종교 통제가 지난 수년간 별로 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베트남 당국이 자신의 조사를 방해했다고 비난했다. 하노이 정부는 이에 대해 1999년 3월 22일 당기관지인 Nhan Dan에서 아모르의 비난을 근거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베트남 정부는 종교문제와 관련하여 그 사이 많은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외국인들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 예로 최근 바티칸의 사절단이 1999년 3월 15-19일 베트남을 다녀간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공산당의 종교 문제에 대한 기본적 입장은 당국이 발표한 다음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인권이나 종교적 상황을 조사하려는 구체적인 목적을 갖고 베트남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개인이건 조직이건 용납될 수 없다. 아무도 인권 및 신앙자유의 침해의 구실로 베트남 정부와 인민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베트남에서의 사정을 엉터리로 보도하며 혹은 베트남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
3. 정부의 종교에 대한 감시와 통제
베트남 정부의 공식적 인정을 받는 종교들은 불교, 가톨릭, 개신교, 까오다이, 호아하오, 이슬람이다. 1992년 헌법 제70조에 의하면 "모든 시민은 어떠한 종교신앙에서도 믿을 혹은 믿지 않을 자유를 갖고 있다. 모든 종교는 법 앞에서 평등하다. 모든 신앙의 예배장소는 법에 의해 보호된다. 누구도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으며, 누구도 신앙의 자유를 법과 국가정책에 일치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용할 수 없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은 그 인민에게 외형상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위 조항의 끝부분에서 명백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베트남 공산당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종교 및 신앙의 활동을 언제든지 제한, 통제할 수 있다.
종교에 대한 당국의 다각적인 통제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되고 있다. 불교, 까오다이, 가톨릭계가 보고하듯이, 당에서 보낸 자들이 신분을 감추고 들어와 각종 예배를 감시한다.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종교적 죄수들의 석방이 이루어지는 동안 또 다른 곳에서는 다른 체포와 구금이 이어지고 있다. 1999년 4월 정부는 종교적 신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새로운 법령을 발표했는데, 이 법에서 종교단체들은 국가가 이전에 압수한 토지나 재산에 대해 상환 요구를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공산당 정부는 또한 개신교의 가정집회 등 당국이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모임에 참가하는 것을 강력히 금하며, 불교, 가톨릭, 개신교, 까오다이 등에서 양성하는 사제나 목사의 숫자를 제한했다. 정부의 이러한 통제 때문에 대부분의 개신교 가정교회는 당국에 등록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밖에 정부는 공립학교에서 종교수업을 금하며, 종교적인 간행물은 모두 정부인가가 있는 출판사에서만 출판하도록 요구한다. 끝으로 선교와 관련하여 베트남 당국은 외국 선교사들이 국내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는 것을 금하고 있다. 베트남 시민이 전도를 할 경우, 그것은 정식으로 허가된 곳에서만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자인 외국인들이 미사나 예배를 인도할 경우, 그것은 오직 외국인들의 모임에서나 가능하다. 정부의 이러한 통제에 대해 1999년 9월 5일 불교, 기독교, 까오다이, 호아하오 등의 종교단체들은 연합하여 당국에게 성직자의 양성과 종교건물의 건축 등 자신들의 내부적 일에 대해 완전한 자율권과 종교와 국가의 엄격한 분리를 요구했다. 선례가 없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그러나 그렇다할 반응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베트남 사회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최근 영적인 생활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의 이같은 흐름에 역행하여 베트남 국가는 국민의 영적인 생활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려고 한다. 베트남 공산당 정부의 이러한 자세는 1980년대 말 이후 전세계적으로 탈냉전과 탈이념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공산주의자들의 입지가 갈수록 허물어지고 정치적 정당성이 갈수록 약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사회적 통제를 상실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미 세계 도처에서 민주화 운동과의 긴밀한 상관성을 보여준 기독교계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불신과 경계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4. 호아하오교와 베트남 당국간의 갈등
2000년 12월 20일, 베트남 남부의 안쟝(An Giang) 지방에서 호아하오(Hoa Hao 和好)교의 일부 세력의 추종자들이 더욱 많은 종교적 자유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나왔다. 호아하오교는 샤머니즘적인 영적 체험을 한 휘언푸소(Huynh Phu So)라는 카리스마적인 불교승려에 의해 1939년경 안쟝의 호아하오 마을에서 창건된 신흥종교로, 부처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조상신과 민족적 영웅에 대한 숭배를 강조한다.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호아하오 불교협회(Hoa Hao Buddhist Association)의 주장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이미 12월초에 수천 명의 호아하오교 신자들이 협회의 총무인 하 하이(Ha Hai)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하 하이는 미대통령 클린턴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호치민시로 가려고 하다가 경찰에 의해 억류되었다. 당국은 그를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야기할 우려를 가진 위험스러운 인물로 간주하고 있었다. 구금된 하 하이는 단식투쟁에 들어갔으며, 그의 두 아들들은 경찰에게 두드려 맞았다. 하 하이의 구속은 사실 그 이전 수 개월간 당국과 협회간의 알력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다. 협회의 회원 가운데 5명이 9월에 정부 비방죄로 체포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