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카렌족 반란군 '신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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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0 23:13 조회1,49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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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카레족 신의 군대 지도자 쌍둥이 형제
카렌족 반란군 “신의 군대” 2000년 1월 24일 아침 7시 30분경 미얀마 국경을 넘어온 게릴라 10명이 군복차림에 M16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복면을 쓴 채 태국 서부에 있는 랏차부리(Rachaburi)의 한 병원을 급습했다. 이 도시는 방콕에서 서쪽으로 약 120km, 태국-미얀마 국경으로부터는 48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들은 병원을 점령하고 병원에 있던 600명 이상의 병원직원, 환자, 가족들을 인질로 잡았다. 그들은 태국 당국에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들을 제시했다.
미얀마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자신들의 동지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진을 국경지대로 보낼 것. 미얀마로부터 탈출하려는 난민들과 반군을 위해 태국 국경을 개방해 둘 것. 태국 군대는 미얀마 반군의 기지들에 대한 포격을 중단하고 카렌(Karen) 지역의 무장조직들에 대한 미얀마 정부군의 공격을 지원하지 말 것. 태국은 미얀마 정부군이 전투행위를 중단하도록 미얀마 정부에 대해 압력을 가할 것. 자신들이 인질과 함께 국경지대로 철수하는 데 필요한 3 대의 헬리콥터를 보내줄 것. 자신들의 기지에 포격을 가했던 태국 군인들에게 징벌을 가할 것.
10명의 테러리스트들의 정체에 대해 태국과 미얀마에서 다양한 설명들이 나왔지만, 요점은 그들이 모두이건 그 일부이건 간에 “신의 군대”(God's Army)라는 조직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뒤에 밝혀진 또 다른 사실은 그들 중 일부가 1999년 10월 방콕의 미얀마대사관을 점거하여 세상을 놀래게 했던 “Vigorous Burmese Student Warriors"라는 급진적인 반정부 학생조직의 일원이라는 점이다.
”신의 군대“는 카렌민족연합(KNU)으로부터 약 4년 전에 떨어져 나와 결성된 무장투쟁조직으로 현재 100-200명의 병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주로 학생들과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조직은 카렌민족연합으로부터 무기 지원을 받지만 활동은 독립적으로 행한다.
(Johnny Htoo)와 루터 투(Luther Htoo)라는 12살 난 쌍둥이 형제로, 이들은 총알과 폭탄에도 다치지 않는다고 그 추종자들이 믿고 있다. 투 형제는 검은 색의 혀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그들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표시라고 믿고 있다. 전투에 나가기 전에 게릴라투사들은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 투 형제에게 경배를 드리고 행운과 승리의 축복을 받는다.
“신의 군대”는 카렌족의 많은 다른 저항단체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으며 랏차부리의 국경 맞은 편에 있는 꺼마뻘로(Kamaplaw)의 한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꺼마쁠로가 미얀마 정부군에 의해 짓밟힌 이후, 더욱 깊숙한 밀림의 마을로 들어가 피신해 있다. 이들은 일단 무기를 내려놓고 군복 대신 평복을 하고 있지만 복수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태국 정부는 처음에는 부분적인 수용의 태도를 보이다가 점차 이들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권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1월 25일 새벽에 태국군의 특수부대가 병원을 급습하여 10명을 모두 사살했다. 인질로 잡혀 있던 병원의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다. 나중에 언론에 보도된 인질들의 상황설명에 따르면, 10명의 테러리스트들은 모두 먼저 항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잡히자 머리에 총을 맞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태국 당국은 미얀마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를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미얀마와의 국경지대가 미얀마 반군들의 무장투쟁 배후지가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국경지대에서 반정부활동을 전개하는 미얀마의 여러 무장단체들은 차후 그 위상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얀마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불리하면 종종 국경을 넘어 피할 수 있던 배후지를 잃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국의 이러한 자세는 다른 한편으로는 반군들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자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얀마 당국은 차후 그 위상이 약화된 반군들에 대해 더 이상 타협적인,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더욱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