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화인사회와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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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09 23:18 조회1,49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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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이후 군부의 독재체제 하에서 많은 압박을 받았던 미얀마 화인들이 1988년 이후 다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미얀마에서 그들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미얀마-중국 관계가 긴밀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미얀마 정부의 국가경영에 있어서의 자세 변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미얀마 진출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 노력의 결과다. 1988년 이후 미얀마 정부는 개방정책노선에 입각하여 경제정책을 더욱 완화하여 공업 및 상업 부문에 대한 사적 자본의 투자 허용을 확대했다. 1988년에 외국인직접투자법을 제정했는데, 이로써 화인들의 경제적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리하여 화인들은 1988년 이후 미얀마의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사회적 힘으로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의 조직적 활동이 되살아나고 있다. 1990년대 중엽의 조사에 따르면, 수도 양곤에는 미얀마 중화총상회(中華總商會)가 유일한 화인단체로서 활동 중이지만, 중부의 만들래(Mandalay)에서는 여러 방언집단들의 화인협회들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총상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최근 화인 사업가들이 미얀마 군부인사들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위해 그들과 빈번한 골프 모임을 갖고 있는 것도 저간의 사정을 반영한다. 1990년대 들어서서 미얀마 화인들의 중국문화적 정체성이 부활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국제적인 중국계 자본이 미얀마에 투자되는 것이 늘고, 해외중국인들이 미얀마 화인들과 활발한 접촉을 하면서, 그동안 국적을 변경하고 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노출하기를 꺼려왔던 많은 자들이 다시 "중국적 성향“(Chineseness)을 드러내고 있다.
1980년대 말 이후 화인사회의 활성화는 무엇보다도 만들래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첫째 미얀마-중국간 무역이 최근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점, 둘째 미얀마 정부가 1989년 만들래를 대외무역에 개방한 것 등의 두 가지 요인들로 설명될 수 있다. 그 중 두 번째 요인이 보다 직접적인 것으로서, 만들래의 개방 이후 많은 중국인들이 이 도시로 유입해 들어와 상업, 부동산업, 그리고 호텔업과 요식업 등의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만들래에 들어오는 중국인들 중에는 미얀마인 주민등록증을 소지하고 있는 자들이 많다. 이것은 만들래에서 미얀마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죽으면, 그 자의 주민등록증이 중국 운남성의 브로커에게 넘어가 위조되어 만들래로 가서 활동하고자 하는 중국인들에게 팔리기 때문이다. 만들래에서 화인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고 있으며, 그들의 경제적 지배적 상황이 두드러지면서 최근 만들래에서 반화인 정서가 일어나고 있다.
미얀마 화인들의 위상에 대한 전망과 관련하여 최근 중국과 미얀마간 정치적 및 군사적 관계가 고도로 긴밀해지고 있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외부적 관찰에 따르면, 중국은 미얀마로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 특히 군사적으로 영향력을 팽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경 정부는 특히 운남성을 그 진출의 전초기지로 삼고 미얀마를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팽창에 대해 여러 아세안 국가들과 인도가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1997년 이전에 곤명(昆明)과 대리(大理) 근처의 하관(下關)을 잇는 철로 건설을 시작했으며, 1997년 초까지 중국은 소위 ‘버마도로’(Burma Road)인 곤명-서려(瑞麗)-버모(Bhamo)의 도로를 보수했다. 버모는 에야워디(Aeyawaddy)강으로 이를 수 있는 미얀마 동북부의 마지막 도시이다. 1997년 3월 4일, 북경의 China News Agency 보도에 의하면, 중국인과 미얀마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그룹이 운남을 경유하여 에야워디강의 수로를 이용하는 가능성을 공동으로 연구했으며, 동년 5월 5일 신화(新華) 통신의 보고에 따르면, 양국 정부는 이러한 육로-수로 교역루트를 개발하는 것에 상호 동의했다.
최근에는 영국에서 있었던 미얀마 문제에 관한 국제적 “비밀회담”에서 결정된 미얀마에 대한 10억 US$의 차관 논의가 미국의 몇몇 상원의원들의 반대와 양곤 정부의 거부로 무산되었고, 1999년에 미얀마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자 중국 정부가 2억 US$를 제공한 일이 있었다. 중국은 그 대가로 미얀마 정부가 양곤에서 중국어 신문의 간행을 허락하고 만들래에서 중국인 사업가들에게 사업상의 특혜를 부여할 것을 요구했으며, 미얀마 정부는 이에 대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