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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생존의 예술가 훈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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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4 22:26 조회1,2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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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예술가 훈사인 총리     1952년에 태어난 훈사인(Hun Sen) 18세에 크메르루즈(Khmer Rouge) 가입했다. 그는 1975 프놈펜을 공략하는 전투에서 왼쪽 눈을 다쳤고 대대의 부지휘관이 되었다. 1977년에 그는 폴폿(Pol Pot) 배반하고 휘하의 소부대와 함께 베트남 쪽으로 넘어갔다. 1979년초에 베트남의 공격으로 폴폿 정권이 무너진 , 그는 하노이 정부가 세운 캄보디아의 꼭두각시 정부의 외무부장관이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7세로, 세계 최연소로 국가의 외무부장관이 셈이었다. 그는 1985년에는 33세로 캄보디아의 총리가 되어, 역시 세계 최연소 총리의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1991년에 시하누크(Sihanouk) 더불어 파리 평화조약에 서명했으며, 1993년에는 유엔의 감시 하에 치러진 총선에 입후보하였다. 선거 결과 노로돔 라나리드(Norodom Ranariddh) 이끄는 푼신펙(FUNCINPEC) 승리했고, 훈사인의 캄보디아인민당(CPP) 번째 다수당이 되었다. 이에 따라 라나리드가 1총리, 훈사인은 2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2인자로서의 위치에 불만을 품어온 그는 1997년에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라나리드를 1총리 자리에서 쫓아내고 푼신펙의 많은 주요 인물들을 제거했다. 1998 총선에서는 캄보디아인민당이 1여당의 세력을 보여주었고, 라나리드의 푼신펙은 이제 뒤를 쫓아가는 형국이었다.

훈사인은 국내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으로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야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1999년에 캄보디아가 아세안의 회원국이 되기까지 끈질기게 분투했으며, 2002 가을에는 8 아세안 정상회담을 프놈펜에서 개최하여 자신이 대외적으로도 인정받는 자임을 과시했다.

훈사인은 정치권력에서 뿐만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도 강한 성취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비록 중등과정도 마치지 못했지만, 1988년에 Cambodia: 10 Years (지난 10년의 캄보디아) 제목의 책을 썼는가 하면, 1999년에는 캄보디아인민당의 시장경제 노선을 설명한 경제발전에 관한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훈사인은 서구의 적지 않은 언론에서는 자신의 숱한 정적을 잔인한 방식으로 제거하는, 권력에 굶주린 그리고 부패한 독재자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자가 많다. 예컨대 프놈펜 주재 싱가포르 대사인 매티우스(Verghese Mathews)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는 Straits Times 2002 11 16일자 신문에서 크메르루즈 정권의 붕괴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수십년 동안 베트남전쟁 내전으로 황폐해진 캄보디아에 평화를 이끌어온 그를 아세안에서 아마 가장 기민한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훈사인은 그동안 그의 독재적인 국가운영 방식 때문에 서방 세계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아 왔으며, 때문에 캄보디아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재정적 지원도 중단되거나 감축되었다. 그러나 그는 최근 2003 여름에 있을 캄보디아의 총선을 앞두고 서방 국가들이 총선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만드는 다시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2002 11 초에 이미 일본, 호주, 영국, 스웨덴, 미국 등이 600 US$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훈사인이 최근 국가원수의 지위를 탐내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 그의 정적들이 유포하는 것임에 틀림없는 소문의 진위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그와 시하누크 국왕간 관계가 최근 불편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소문의 진위여부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는 현재로서는 극복 불가능하게 보이는 많은 난관들이 가로막혀 있다. 우선 현재의 입헌군주제가 폐지되어야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불가피하고,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의 2/3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캄보디아인민당이 분열되어 있고, 입헌군주제의 지지자인 푼신펙의 세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은 마당에 국회의 2/3 동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입헌군주제 폐지는 서방국가들의 강력히 반대에 봉착할 것이며 또한 국왕을 존경하는 캄보디아 일반 국민들의 반감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Xinhua News Agency News Bulletin, Oct. 10, 2002/Nov. 1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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