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부는 최근 미국과의 대화에서 전쟁피해보상에 관해 논의를 신중하고 재치있게 꺼내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이 논의를 가지고 미국을 압박해가는 분위기이다. 클린턴 미대통령이 2000년 11월 18일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대통령 쩐득르엉(Tran Duc Luong)은 “미국 정부는 베트남 인민들이 전쟁 기간 겪어야 했던 엄청난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인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때까지 피해보상 액수에 대해 언급된 적은 없다. 베트남 전쟁의 그 엄청나고 끔찍한 유산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단 말인가? 1954년부터 1975년까지 전쟁의 과정에서 죽은 베트남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300만 명이며, 전투 중 죽은 자만 110만 명이나 된다. 부상자는 60만 명이고, 오늘날까지 행방불명인 자가 30만 명에 이른다. 또한 1,000만 헥타르의 경작지가 고엽제로 오염되었고, 500만 헥타르의 숲이 파괴되었으며, 미폭발 폭탄이 30만 개나 되어 접근불가능한 지역이 베트남 도처에 있다. 이 미폭발 폭탄들로 매년 수백 명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된다. 그밖에 화학전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기형아들이 출산되고 있다.

또한 미군들의 개별적인 잔인한 행동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예컨대 1969년 2월 25일 메콩강 델타에 있는 한 마을인 타인 퐁(Thanh Phong)에서 그의 부대와 함께 13명의 아이들과 한 명의 임산부를 포함한 베트남 민간인 20명을 처참하게 살륙한 미해병대 밥 케리(Bob Kerrey)의 이야기. 그는 전쟁 후 “국회영예훈장”(Congressional Medal of Honor)을 받았으며,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네브라스카 주지사를 역임했고 6년씩 두 번이나 미상원의원을 지냈다.

윌리엄 캘리(William Calley) 소위가 미 라이(My Lai)에서 최소한 22명의 민간인들을 “고의적으로” 살해한 소위 “미 라이”(My Lai) 사건은 이미 당시에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캘리는 군사법정에서 1971년 3월 29일 유죄선고를 받고 종신형에 처해졌다. 이 재판은 미국에서 캘리의 석방을 요구하는 맹렬한 시위를 불러 일으켰다.

베트남인들은 이 점에 있어서 미국 정치의 비합리성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즉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다른 나라 정부들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 자국민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인들은 1972년 휴전협상시 미국에 대해 80억 US$를 전쟁피해보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이 액수는 그 후 1973년 1월에는 32억 5,000만 US$로 내려갔다. 워싱턴 정부는 이 액수의 지불에 동의했지만, 그 후 북베트남 군대가 남부 베트남에 대해 공격을 재개하자 그마저 지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재 베트남 정부가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배상이 아니라, 적어도 부분적이나마 미국 측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미폭발물 제거에 있어서 협조나 무역상의 특혜 혹은 독가스 희생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에 대한 협조 등이다.

베트남 전쟁의 피해보상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베트남과 미국과의 관계 진전 외에도 국제 사회에서 베트남인들의 위상이 차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리고 베트남 내 정치적 민주화와 시민사회 의식 발달의 문제가 걸려 있다. 그리고 미국의 피해보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 측에 붙어 싸우는 동안 베트남 양민들을 고의적, 혹은 비고의적으로 죽인 한국군의 행위에 대한 책임여부 논란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