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2001년 왕당파의 복귀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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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2 11:44 조회1,50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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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왕당파인 푼신펙(Funcinpec)이 재기를
위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2001년 7월 5일 프놈펜의 푼신펙 당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노로돔 시리붓(Norodom
Sirivudh)은 퇴임하는 똘라(Tol Lah)를 이어 새로운 당 사무총장이 됨으로써, 당 내에서
당수인 노로돔 라나리드(Norodom Ranariddh) 다음의 제2인자
자리를 굳혔다. 이로써 푼신펙은 그 이름에 걸맞게 당의 지도부에 왕실의 핵심적인 두 인물이 포진하게
된 셈이다.
현
국왕인 노로돔 시하누크의 이복동생인 시리붓 왕자는 1980년대 반베트남 저항 투쟁에 참가했으며 그 후 캄보디아-태국
국경 지역에서 푼신펙의 전략가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초에 프놈펜으로 돌아왔다. 총선을 통해 1993년 입헌군주제 국가로 다시 태어난 캄보디아의
정부에서 그는 외무부장관직을 맡았다. 그러나 1994년 당시
재무부장관 삼 라인시(Sam Rainsy)가 내각에서 축출당하자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자신도 장관직을
그만 두었다. 현재 야당의 지도자인 삼 라인시와 시리붓 왕자는 지금도 절친한 사이이다. 정부와의 잦은 충돌 끝에 그는 1995년 결국 체포되었고 이윽고
프랑스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 이듬해에는 당시 제2총리인
훈센(Hun Sen)에 대한 암살시도의 혐의로 부재 중 유죄선고를 받았다. 시리붓와 현 총리인 훈센 사이의 관계가 지금도 껄끄러운 배경의 한 부분이다.
현재 50세인 시리붓 왕자가 캄보디아의 정치무대에 다시 복귀하도록 허락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캄보디아 전문가들은 현
집권당인 캄보디아 인민당과 푼신펙 간에 모종의 타협이 있었을 것이고, 그 타협의 주요 조건에 푼신펙이
시리붓 왕자의 입에 재갈을 물릴 뿐만 아니라 그가 집권당에 협력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가
감옥에 가지 않고 바로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에는 국왕의 중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리붓이 캄보디아의 정치권에 다시 들어와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적 승리로 해석된다. 특히
그의 등장으로 푼신펙 정당이 세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타나고 있다. 푼신펙은 1997년 7월 캄보디아 인민당과의 충돌에서 패배한 뒤 세력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외부의 관찰자들 중에는 심지어 “푼신펙의 지도부가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라고 보는 자들도 있을 정도이다. 현재
푼신펙은 집권당의 협력 파트너 정당으로 빌붙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푼신펙의 관계자들은 2002년의 지역구 선거와 2003년의 총선에서 푼신펙의 재기를 노리고 있는데, 이를 위해 민심의 회복이 우선적 과제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력에서 시리붓 왕자가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시리붓이 서민층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로서 상류층과 서민층의 이해관계를 융합하는 데 적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