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해체 위기에 놓여 있는 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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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4 11:38 조회1,49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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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시엄리업 시의 푼신펙 당사무실)
시하누크에 의해 1981년 창립된 푼신펙(FUNCINPEC)당은 손산이 이끈 크메르해방민족전선(KPNLF)과 폴포트의 크메르루즈(Khmer Rouge)와 함께 1989년까지 베트남 군대와 베트남에 의해 조종된 프놈펜 정부에 대항하여 싸웠다. 베트남 군대가 물러난 다음 1993년 치러진 총선에서 푼신펙은 가장 많은 득표를 하여 제1 여당이 되었다. 총선 후 푼신펙은 한 동안 캄보디아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고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당은 현재 해체될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의 이 위기의 출발점은 2002년 2월 지방 선거로, 여기서 푼신펙은 총 1,621개의 지방선거구에서 10군데에서만 이겼다. 이로써 1,598개의 선거구를 장악한 집권당인 훈센의 캄보디아인민당(CPP)은 말할 나위도 없고, 13군데에서 승리한 삼라인시당(Sam-Rainsy Party)에도 뒤지는 참패를 겪었다. 선거 패배 이후 푼신펙은 4부분으로 쪼개졌다.
1) 푼신펙의 총재인 라나리드의 이복동생인 노로돔 짜끄라퐁은 2002년 5월 ‘크메르영혼당’이라 불리는 정당을 신설했는데, 목표는 주로 농촌 지역에서 500만 명 이상의 유권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2) 푼신펙의 또 다른 저명한 멤버인 항 다라(Hang Dara)는 2002년 9월 ‘항다라 운동민주당’이라는 자신의 독자적 정당을 세웠다. 이 당은 현재 20만 명의 지지자들을 이미 확보해 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3) 푼신펙의 나머지 부분은 수구 세력과 진보 세력간 양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수구 세력의 노장 당원들은 진보 세력의 젊은 당원들에 의해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한 방편으로 그들은 내무부의 협동장관인 유 호끄리(Yu Hokkry)를 자신들이 선택한 칸 사보언(Khan Savoen) 장군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그 원인은 첫째 유 호끄리 추종자들의 반발, 둘째 라나리드의 불명확한 태도, 셋째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인 푼신펙의 인기를 실추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훈사인 총리의 이중적 간계 등이었다. 푼신펙의 노장 세력은 이 사건 후 삼라인시당으로 모두 당적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