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사인은국내정치적으로뿐만아니라, 국제정치적으로도자신의입지를강화하기위해노력하는야심적인인물이다. 그는 1999년에캄보디아가아세안의회원국이되기까지끈질기게분투했으며, 2002년가을에는제8차아세안정상회담을프놈펜에서개최하여자신이대외적으로도인정받는자임을과시했다.
훈사인은정치권력에서뿐만아니라, 교육에있어서도강한성취욕을갖고있는것으로보인다. 그는비록중등과정도마치지못했지만, 1988년에Cambodia:
10 Years (지난 10년의캄보디아)란제목의책을썼는가하면, 1999년에는캄보디아인민당의시장경제노선을설명한경제발전에관한단행본을출판하기도했다.
훈사인은서구의적지않은언론에서는자신의숱한정적을잔인한방식으로제거하는, 권력에굶주린그리고부패한독재자로묘사되어왔다. 그러나아시아에서는그를긍정적으로평가하는자가꽤많다. 예컨대프놈펜주재싱가포르대사인매티우스(Verghese Mathews)는싱가포르에서발행되는 Straits Times 2002년 11월 16일자신문에서크메르루즈정권의붕괴에기여했을뿐만아니라수십년동안베트남전쟁및내전으로황폐해진캄보디아에평화를이끌어온그를“아세안에서아마가장기민한정치인”이라고평했다.
훈사인은그동안그의독재적인국가운영방식때문에서방세계로부터적지않은비난을받아왔으며, 이때문에캄보디아에대한서방국가들의재정적지원도중단되거나감축되었다. 그러나그는최근 2003년여름에있을캄보디아의총선을앞두고서방국가들이이총선을재정적으로지원하도록만드는데다시성공한것처럼보인다. 2002년 11월초에이미일본, 호주, 영국, 스웨덴, 미국등이총 600만 US$를지원하겠다고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