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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역사적 국왕을 국가적 영웅으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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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6 21:55 조회1,6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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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파응움 대왕의 동상)

 

라오스 정부는 2003 1 5일을 새로운 국경일로 정했다. 공식적 이유는 14세기에 통치했던 응움 (재위 1353-1371)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응움은 라오스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여 현재 라오스 국가의 토대를 이룩한 왕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대왕 칭호를 부여받았다. 라오스 정부는 응움 대왕의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방송을 통해 라오스 국민들에게 홍보했다. 

라오스 정부가 과거 왕정제의 역할을 이처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75 공산주의 정권의 창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저변에는 공산주의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생존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다. 1975 마지막 국왕이 퇴위하고 공산주의는 라오스 국가의 정체성 자체로 규정되어 왔다. 정체성의 구심점에는 권위주의적인 공산주의 지도자가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까이손 품비한에서 누학 품사반으로 그리고 현재의 캄따이 시판돈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탈냉전과 세계화의 추세와 개혁개방의 대내외적 압박 속에서 라오스 공산주의 엘리트는 자신들의 라오스 사회에 대한 통제력이 점차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1993 캄보디아마저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로 돌아간 것은 라오스에게 충격이었다.

라오스 정부가 라오스 왕정제 전통의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데는 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최근 국민으로부터 불신되고 있는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징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한 신전통주의적 몸부림이라는 해석이다. 둘째는 갈수록 증대되는 외국의 영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와 연결될 있다. 점에서 특히 오늘날 라오스 사회를 풍미하는 태국의 문화적 영향이 중시된다. 라오스인들이 태국의 TV 신문을 보고 태국 대중음악을 듣는 것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또한 타이어와 태국 화폐가 라오스 사회에 범람하고 있다. 라오스의 민족적 정체성은 종종 태국의 것의 축소판으로, 그리고 라오스의 문화와 민족은 태국의 것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태국인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라오스인들을 문화적으로 처진 민족으로 깔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또한 민족적 소속감과 국가적 정체성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있는 국왕이 라오스에는 없는 것을 얕본다.

라오스인들이 태국 국왕을 존경하고 많은 라오스 사람들의 집에 태국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은 라오스 국민이 자신들에게 국왕이 없는 점을 얼마나 아쉬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에서 라오스 공산당 정부는 라오스 사회에도 왕정제적 상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왕정제적 상징을 부활하려는 라오스 정부의 결정이 과연 바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라오스 공산주의자들이 외세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국가의 독립을 지켜내지 못한 전통적인 왕정제를 극복하고 정권을 창출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것이다. 응움 왕을 라오스의 국가적 영웅이자 새로운 국가적 정체성의 구심점으로 만들려는 것은 공산당 정부의 역사적인 권력 기반을 부분적으로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The Nation, 200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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