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베트남 영화의 변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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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8 15:20 조회1,68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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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영화진흥사업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금 부족이다. 과거에 정부는 매년 평균 70만 달러의 예산으로 영화산업을 보조하였다. 이 자금이 전국의 20개 영화제작소에 나누어 지급되었으므로 각 제작소에는 아주 적은 액수만이 할당되었다. 그래서 감독 한 명 혹은 주요 배우 한 명이 매달 받는 액수는 40달러에 불과하였다. ‘자금 부족’ 때문에 일부 여배우들은 콜걸이 되어 부수입을 벌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장 떠들썩하였던 것은 도색영화에만 전문적으로 출연하는 배우인 정서연미(丁瑞燕薇)가 매춘행위로 구속되어 18개월의 징역형에다 ‘사상개조’까지 받았던 사건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1991년의 관계정상화 이후 문화와 영화의 합작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중국의 주장(珠江) 영화제작소와 베트남의 전국작가협회영화제작공사는 양국간 최초로 합작하여, 1930년대에 호치민이 홍콩에서 혁명활동에 참가했다가 영국 식민 당국에 체포되었으며 뒤에 중국공산당과 베트남공산당의 지하당원의 구조활동으로 출옥한 사건을 다룬 영화인 <홍콩탈험(香港脫險)>을 제작하였다.
이 영화는 베트남의 작가 우매(友梅)의 문학작품 <홍콩 시절의 원애국(阮愛國)>을 각색하여 만들어졌으며 제작비는 180만 위안(99만 8,000달러)나 되었다. 감독, 극본, 제작 모두 중국과 베트남이 공동으로 담당하였으며 또한 중국, 베트남, 프랑스, 독일, 미국 등 10여개 나라의 배우들이 투입되었다. 이 영화는 특별히 2003년 베트남 건국기념일(9월 2일)에 맞추어 전국에서 개봉되었다. 중국 윈난민족(雲南民族) 영화제작소는 최근 베트남 작가협회영화공사와 합작으로 극영화 <하노이, 하노이>를 제작하여 이미 베트남의 수도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이 영화는 중국처녀 쑤쑤가 단신으로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감동의 드라마이다.
전 하노이 주재 중국대사 리자중(李家忠)은 중국의 텔레비전 연속극이 이미 베트남 각 계층에 필수불가결한 생활 구성 부분이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갈망(渴望)>, <송씨 세 자매>, <황제의 딸(還珠格格)>, <서유기>, <홍루몽>, <삼국연의> 등 중국의 텔레비전 연속극 40여 편이 연이어 베트남에 상륙하였다. 32부작 텔레비전 연속극인 <난사오린(南少林)>이 베트남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성황리에 방영된 후 팡스위(方世玉)는 베트남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러나 맹렬한 한류(韓流)는 베트남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특히 <대장금>과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국의 연속극은 베트남의 젊은 시청자들을 도취시켰으며 베트남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유명한 영화제작자인 최청운이 맡고 있는 삼성그룹 산하의 한 영화제작 회사는 2005년에 베트남 측 파트너와 ‘일거양득’의 합작에 서명하였다. 이 회사는 베트남에 영화학교를 세워 베트남 영화인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한편 베트남의 한국영화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도 이 학교의 학생들이 실습을 하기 위해 6개월간 한국에 체류하는 것을 보조할 계획이다. 4년 전에 한국의 한 ‘우호적’ 기업이 호치민에 복합영상관 찬석대극장(鑽石大戲院)을 개관하는 데 투자하였으며, 또 베트남 중부의 주요 도시 다낭에 한 곳을 더 개관할 계획이다. 이처럼 베트남 영화산업은 경제성장과 외자 도입에 발맞춰 과거의 궁핍한 시기에서 벗어나 지금은 백화제방의 새로운 창조적 시대로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