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베트남 영화의 변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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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8 15:16 조회1,69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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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민 출신인 쩐안훙 외에 유명한 베트남 영화감독으로는 미국 이민자 출신 빅토르 뷔 감독이 있다. 그는 70년대에 부모를 따라 베트남을 탈출하여 로스앤젤레스의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였으며, 졸업작품 <폭죽(鞭炮)>은 햄프턴(Hampton)과 신항탄(新港灘, New Port Beach)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였다. 그는 5년 전에 학교 동창생과 함께 영화제작사를 설립해 두 번째 작품인 <첫아침(第一個淸晨)>을 찍었으며, 이 작품으로 3년 전 베트남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이듬해의 샌디에고(San Diego)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심령(心靈)>은 그의 세 번째 장편 극영화이다.
유명한 <성은 베트, 이름은 남(Surname Viet, Given Name Nam)>의 감독인 찐민하는 뒤에 미국 국적을 가진 베트남 영화학자가 되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토이 부이 감독도 미국 국적의 감독이다. 1995년에 찍은 그의 첫 작품은 베트남전쟁 종전 이후 베트남에서 촬영하고 제작하였으며 또 완전히 베트남어만을 사용한 영화인 <쓰리 시즌>이다. 이 영화는 그 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으며 또 1999년 선댄스(Sundance)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관객들의 호평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다.
32세의 자니 누엔(Johnny Nguyen)은 대박 영화인 <스파이더 맨 2> 등 할리우드의 액션 영화에서 대역배우와 액션배우 역할을 맡았었다. 그는 뛰어난 무술실력과 잘생긴 외모 덕택에 지금은 각국의 무술영화의 총아가 되었다. 베트남 빈증성 출신인 자니 누엔은 8살 때 가족을 따라 홍콩으로 가서 중국 태극권과 일본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을 익혔으며 범태평양무술대회에서 우승하였다. 그가 찍은 영화는 <사이공 이클립스(Saigon Eclipse)>, <데몬 헌터(Demon Hunter)>, <하우스 오브 더 데드(The House Of The Dead) 2>, <권패(拳覇) 2>, <옹박 2> 등이다. 또한 무술 스타인 이연걸(李連杰)와 두 편의 액션영화에서 ‘격투’를 벌였다. 베트남은 최근 그에게 ‘귀국’하여 베트남-중국 국경 지대의 랑선에서 촬영하는 액션영화 <영웅세가(英雄世家)>의 주연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한 때 노르웨이에서 거주하였던 베트남의 모델 겸 가수인 오청운(吳菁芸)이며, 이 작품은 그녀의 처녀 출연작이다.
베트남 본토의 영화산업은 최근 여러 차례 훌륭한 성과를 창출하여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아울러 영화산업 종사자들에게 국제시장 개척에 대한 무한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베트남의 영화는 한국이나 태국과 같이 아시아 영화 부흥의 조류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 2000년 12월에 제45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가 하노이에서 열렸는데, 이는 베트남 개방 이후 처음 열린 국제영화제였다. 여기에서 베트남전쟁을 다룬 <유사세월(流沙歲月)>은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여우주연상과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베트남에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홍콩의 스타 유덕화는 아쉽게도 참가하지 못했다. 홍콩의 또 다른 스타인 량차오웨이가 주연한 <씨클로>는 상영금지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 두 명의 대 스타가 함께 출연한 홍콩영화 <무간도>는 2004년 베트남에서 크게 흥행하였다. 배석전(裴碩傳)이 감독한 <야간질주>는 2000년 5월 프랑스에서 열린 영화제에서 최우수단편영화상을 수상하였다. 금년 2월 방콕 국제영화제에서는 도안민푸옹(Doan Minh Phuong)과 도안탄응야(Doan Thanh Nghia)가 감독한 <침묵의 신부>가 동남아시아 최우수작품상을 획득하였다. 음향과 영상이 뛰어나고 호화롭고 쾌적한 설비를 갖춘 복합영상관이 최근 4년 동안 수도 하노이와 남부 제일의 도시 호치민 등지에서 속속 출현하였다. 이들 영화관의 일등석은 한 장에 적어도 2~3달러는 되는데, 이는 보통 사람들의 하루 수입보다 많은 액수이다. 한국이나 미국 등 외국기업과 현지의 개인기업이 합작으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영화관은 오늘날 베트남 청년들의 일종의 ‘귀족화’ 소비 장소로 바뀌었다. 오래된 국영 영화관들은 관객이 없어 한산하며 어떤 곳은 생존을 위하여 이미 비디오를 방영하는 찻집이나 전자오락실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