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베트남 영화의 변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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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8 15:11 조회1,80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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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洲週刊 20卷 27期,
베트남의 경제개혁은 영화산업에도 혁신을 가져와 ‘미제국주의’ 저항 일색이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해외귀국파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외국으로 이민간 베트남인 2세 감독들이 베트남으로 돌아와서 혁신의 깃발을 들어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 당국은 국산 영화에 영문 자막을 넣을 것을 요구하는 등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 영화는 국제적 호평을 얻고 있다.
최근 베트남의 국회 회기 기간에 쩐득르엉 대통령, 응웬반안 국회의장, 판반카이 총리가 동시에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세대 교체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이는 외부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경제 건설의 대강을 토론한 뒤, 의원들은 1년에 겨우 10편 정도 제작되는 베트남 국산 영화에 대하여 고민했다. 그들은 정부 당국에 대하여 영화산업을 진흥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베트남 영화가 빨리 ‘궁핍한 시기’를 벗어나 더욱 많은 우수작품들이 외국으로 수출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들은 정부 당국이 국회에 심의하라고 제출한 <영화법안>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또한 영화검열 기준을 완화하여 폭력과 노출 장면 등을 임의로 삭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창의성이 풍부한 베트남 영화가 국제무대를 밟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국제적인 측면을 고려한 발언들도 외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정부 인사는 “영화검열 기준은 이전과 비교하여 많이 완화되었다. 다만 정치적 주제를 다룬 영화들은 여전히 엄격히 심사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영화가 교육ㆍ선전 수단이라는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시장원리에 따라 굴러가는 전체 영화산업의 큰 변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현재 베트남에는 적어도 30개의 개인 혹은 외자(外資) 영화제작사가 차례로 생겨났다. 따라서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관객들은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그들이 보는 영화는 더 이상 ‘미제국주의’에 대한 월맹의 항전을 다룬 ‘비행기와 대포’가 등장하는 전쟁영화나 사회주의 선전 영화가 아니다. 그들은 지금 세계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서 미국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의 액션영화 등을 감상하고 있다.
베트남의 신세대 영화감독들의 대다수는 해외 이민자들이다. “베트남 영화의 깃발을 들어올렸다”고 칭송받는 프랑스 국적의 베트남 천재감독 쩐안훙은 1962년에 베트남에서 출생했으며, 13살 때 파리로 이민을 가서 철학과 영화를 전공했다. 쩐안훙은 동서양의 철학과 문학을 하나로 융합하여, 1993년에 <그린 파파야 향기>, 1995년의 <씨클로>, 2000년의 <여름의 수직선에서>를 만들어 각각 프랑스, 세자르, 베니스, 오스카 등의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다.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은 이 세 편의 영화는 영화 애호가들로부터 ‘쩐안훙의 삼부곡’으로 불리며 국제영화계에서 그의 지위를 확고히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