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2006년 정치 개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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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8 15:41 조회1,37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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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3할이 넘는 공무원들이 부정한 수뢰행위를 했다고 한다. 2000년에서 2004년 사이에 부정부패로 징벌을 받은 성급(省級) 탐관오리가 1만2천 명에 이른다. 2006년 연초에는 베트남 교통운수부에서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대소 공무원들이 세계은행과 외국정부에서 기부한 70만 달러의 공금을 횡령하여, 유럽 축구경기 도박에 돈을 걸었던 것이다. 장관 다오딘빈과 차관 등 근 200여 명이 연루되어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해당 사건은 정부의 검찰총장과 국가감찰부 장관의 옷을 벗게 하였다.
태국의 베트남 문제 전문가들은 응웬민찌엣과 응웬떤중은 훌륭한 팀이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적임자이며 인민들이 친숙하게 느낄만한 지도자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베트남이 아세안에 가입한 지 벌써 11년이나 되었고, 작년의 경제성장률은 8.4%에 달해 동남아에서 가장 높다. 경제 및 무역 투자에 있어 정국 혼란으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태국을 추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새 총리 응웬떤중은 줄곧 정치 스타였다. 지난 8년 내내 전임 총리 판반카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베트남 역대 부총리 중에서 가장 막강했던 부총리였다. 11년 전 응웬떤중이 내무부 차관으로 일할 때 남다른 담력으로 까다로운 부정부패 사건을 적잖이 처리하여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크게 강화하였다. 1996년 베트남공산당 8차 전당대회 당시에는 46세의 나이로 최연소 정치국 위원이 되었고, 당 중앙 경제부 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1996년에 아시아 금융위기가 베트남에까지 파급되자, 응웬떤중은 위기에 대처하라는 명령을 받아 부총리 이외에도 국가은행 행장을 겸임하고, 금융체계의 건전화, 국유기업의 개혁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였다. 응웬떤중은 경영환경을 더 개선하고 완비하여, 연간 경제성장률 8% 이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신임 국가주석 응웬민찌엣은 유명한 수학자로 학계에 잘 알려졌던 인물로서 특이한 인생 역정을 가지고 있다. 응웬민찌엣는 18세 때에 처음으로 혁명에 참가하였고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송베성에서 성위원회 부서기와 서기를 역임하였다. 이때 농업 위주의 보잘것없는 지역을 외국 상인들이 몰려드는 흡인력 강한 투자의 천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1997년 응웬민찌엣은 전국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호치민시 시위원회 부서기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12월 베트남공산당 제8기 제4차 중앙전체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위원에 당선되었다. 2000년 초에는 호치민시 시위원회 서기로 승진하였다.
남방에서 공무를 보던 기간, 응웬민찌엣은 국제 매체로부터 찬사를 받는 개방과 혁신의 “발전기”이었을 뿐만 아니라 절대 냉정한 반부패 투사이기도 했다. 3년 전, 호치민시에서 대형 범죄 집단을 적발함으로써 중앙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응웬민찌엣은 국가주석에 취임한 후 발표한 담화에서, 임기 내에 건전한 법제를 세우는 일에 큰 뜻을 두고자 하니 공무원 간부들이 자신의 본분을 분명히 이해하고 직무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였다.
(亞洲週刊, 20권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