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2006년 정치 개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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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8 15:40 조회1,34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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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웬민찌엣과 응웬떤중이라는 남방 개혁 주도자는 이제 하노이 당국의 “최고위 관리자”가 되어, 두 명의 북방파 주도인물과의 권력투쟁에서 권력을 “절반씩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베트남 국회는 이제 더 이상 “고무도장”을 상징하지 않는다. 갈수록 많은 권한을 발휘하고 있는데 심지어 국가와 정부 관료를 임명하거나 파면하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국가건설 강령과 정책을 제정하는 직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응웬푸쩡 이외에 최고 권력을 가진 북방파의 리더가 있는데, 그가 바로 소수민족인 따이족 출신의 농득마잉이다. 그는 금년 4월 베트남공산당 10차 전당대회에서 임기 5년의 당 중앙 총서기에 재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은 응웬푸쩡에 비해 온화한 편이다. 설령 응웬푸쩡이 개혁파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보수파로 여겨질 지라도, 자기가 손수 집필해 금년 베트남공산당 10차 전당대회에 보고한 정치 보고에서는 당정분리를 강조한 바 있다. 즉, 당은 정부의 직무와 각급 당부의 영도기관에 간섭하거나 대신할 수 없고, 정부 부문은 반드시 책임제를 실행해야 하며, 또한 정기적으로 민의의 대표나 감독 부문으로부터 심의와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제 막 출범한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의 삼두마차가 얼마나 긴밀히 합작할 수 있느냐에 따라, 향후 개혁개방의 발걸음이 잘 나갈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는 바로 8천만 베트남 백성들이 지극히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젊고 혈기 왕성한 응웬떤중이 총리에 취임한 후, 즉시 대규모의 구태의연한 중진들을 과감하게 도태시켰다. 이들은 하는 일 없이 지내는 간부관료가 되었다. 대신 현명하고 유능하며 청렴결백한 기술 관료들을 대거 중용하여 내각의 고위직에 배치하였다. 그 중에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부총리 팜쟈키엠을 수석부총리로 승진시켜 외교부장관까지 겸임하도록 하였다. 62세인 팜쟈키엠은 하노이 사람으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과기환경부장관과 국가계획 및 투자위원회 부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외교능력 또한 상당하다. 팜쟈키엠과 함께 10차 전당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치국에 진입한 재정부장관 응웬신흐엉은 이미 퇴직한 부콴의 뒤를 이어 재정 및 경제 사무를 주관하는 부총리로 승진하였다.
베트남이 150번째 회원국으로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게 되면서 2006년 11월에 하노이에서 거행하는 APEC 정상회의 등의 대사건은 이미 응웬신흐엉을 시험하는 과제가 되었다. 일찍이 하노이시 인민위원회 부주석과 재정부 차관을 역임했던 부반닝이 재정부장관직을 이어받았는데, 그는 경영관리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각기 새로운 지도부가 취임하면서 제일성으로 부르짖은 것은 고질적이고 일상화되어 있는 관료의 부정부패에 대수술의 메스를 가함으로써 영광스런 당풍(黨風)이 사람들의 욕을 먹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국치국난(國恥國難)에 비유되는 부정부패 현상은 베트남의 새로운 1기 지도부가 맞이해 있는 중대한 도전이다. 이런 이유로, 응웬떤중은 “호랑이 잡는 영웅”으로 불리는 쯔엉빈쩡을 부총리로 중용해 반부패 업무의 책임을 맡겼다. 그는 당 중앙의 내정위원회 위원장과 남방 벤쩨성 성장을 역임했다. 63세의 쯔엉빈쩡은 생활이 소박하고 매일 아침 식사로 국수를 먹는다고 한다. 수많은 중앙의 부정부패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 처리되었다. 쯔엉빈쩡은 말하기를, “반부패 작업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인민이 참여해 함께 척결하고자 하면 싸워 승리하지 못할 바가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