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2006년 정치개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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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8 15:38 조회1,40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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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회는 젊은 새 국가주석 응웬민찌엣과 새 총리 응웬떤중을 선출하고, 전국에 부정부패의 척결을 호소하였다. 사유화를 증진시키고 언론자유를 더 많이 허용할 것이다. 베트남공산당은 경쟁선거, 연소화 및 내부 대토론을 실행하였고, 이제 더 이상 정부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책임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회는 이제 더 이상 ‘고무도장’이 아니다. 정치개혁의 발걸음이 중국을 앞서고 있다.
1개월 반에 걸친 베트남 제11기 국회 9차 회의가
호찌민시 시위원회 서기인 63세 응웬민찌엣이 496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에서 94%의 최고 지지를 얻어, 69세 쩐득르엉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에 당선되었다. 일찍이 중국 광시(廣西)사범대학에 유학했던 56세의 응웬떤중이 전임 총리 판반카이의 추천에 따라 92%에 이르는 국회의 지지를 얻어 신임총리에 당선되었다. 이로써
최고입법기관인 베트남 국회가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예년의 관례에 따르면 베트남공산당 대표대회에 연이어 열리는 국회는 내년에야 국가 지도부 인사안을 심의하고 비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6년에 확실시되는 WTO 가입을 신속하게 차질 없이 진행하고, 미국이 주는 무역상 최혜국대우를 획득하려면, 보다 젊어진 지도부를 가능한 신속하게 구성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번 베트남 고위층의 특별한 인사 변동은 베트남공산당 창당 76년만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치판도 상의 중대한 변화였다. 사람들을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이 모두 남방 출신의 개혁 주도자이고, 높은 비율의 표를 얻어 국가주석과 총리에 당선되었다는 점이다.
여론이 지적하듯이, 이는 남방 개혁파가 권력투쟁에서 획득한 “평화로운 승리”이다. 기왕에 남방 개혁파를 대표한 인물들은 기껏해야 총리직만을 담당해 왔는데, 이는 그런대로 괜찮은 일로 여겨져 왔고, 실질적인 정권 지휘봉은 모두 북방 보수파인 당 중앙 총서기의 수중에 있었다.
이번에 취임한 두 지도자는 모두 매우 선명한 개혁 레테르를 붙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일찍이 호치민시를 “개혁개방의 선봉” 내지 실험기지로 변화시킨 바 있는 신임 국가주석 응웬민찌엣은 경제 활동과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속박을 타파하고 일체의 행정관료 체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치안을 담당했던 신임 총리 응웬떤중도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에 필요한 중앙의 권한을 확대하고, 건전한 법 관리를 이룩하며 국제적인 합작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이들은 모두 과거 실천에 비해 이론만 무성했던 보수파 지도자들이 실시하기를 원치 않았던 치국 방안이다.
응웬민찌엣과 응웬떤중은 전국 64성과 중앙 직할시에서 뽑힌 국회의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획득하였는데, 이는 청장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정치 및 경제 개혁에 대하여 얼마나 강력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임하고 있는 신임 국회의장인 “보수파” 응웬푸쩡은 아마 정치적으로 협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62세의 응웬푸쩡은 원래 하노이시 시위원회 서기와 중앙이론위원회 주석을 겸임했던 권위 있는 이론가로서, 일찍이 공산당 기관지인 『공산주의』의 편집장을 역임했었다. 1990년대 초, 소련의 와해가 베트남공산당 내부에 큰 충격을 가했을 때, 공산당 내의 몇몇 사람들이 “오늘날의 소련이 베트남의 내일이 될 수 있다”는 논조를 부르짖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응웬푸쩡은 즉시 “소련공산당은 왜 와해되었나?”라는 글을 발표하여, 당정(黨政) 간의 직능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아 당의 영도가 감독 기제와 역량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렇게 됨으로써 소련이 착오와 와해를 면치 못했다고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