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인권이 무시되는 미얀마 감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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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8 17:34 조회1,52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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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88년 민주화 시위자들에 대한 학살을 폭로하는 미얀마 시민)
미얀마는 중국보다 더 억압적인 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사형 선고에 소극적이고 사형 판결이 실제로 처형까지 이어지는 일은 더더욱 드물다. 가장 최근에 알려진 사형 사례라고 해봤자 1985년 4월6일 양곤 외곽에 있는 인세인Insein 교도소에서 북한 정보원 진아무개 소령이 교수형에 처해진 것이다. 진 소령과 북한 요원인
2004년 3월 민주화 운동가 9명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데, 그들의 죄는 “정부 관료들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었다. 사형 판결이 내려진 이 가운데는 미얀마의 유수 잡지 Eleven
Spot의 편집장 텟 조가 포함됐다. 그러나 자우 등 9명의 사형은 아직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식 기록은 진실을 오도하는 측면이 있다. 원주민 반군과의 분쟁이 있는 국경 지역에서는 초법적인 처형이 일상적으로 자행된다. 반군과 협조한 것으로 의심받는 사람이라면 여자나 아이들도 총살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반군이 식량을 얻는 마을들은 주기적으로 불태워진다. 그리고 인세인 교도소에 갇힌 모든 이들이 강씨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 안에서의 고문과 각종 학대, 잔인한 조사 수법은 종종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중 잘 알려진 경우만 해도 다음과 같다.
▶ 해군 사령관 출신으로 저술 활동을 하던 마웅 토 카는 1989년 군사 법정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현재 가택 연금 중인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매우 가까웠고, 1988년 민주화 시위 당시 수치 여사가 대중 앞에 나타나도록 독려한 이 가운데 하나다. 마웅은 체포되기 전부터 척수염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1990년 9월 인세인 교도소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며 마비 증상을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교도소 의사가 아닌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지 못했고, 1991년 6월 심장마비를 일으킨 뒤에야 양곤 종합병원으로 이송됐다. 사흘 만에 그는 65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 우 틴 마웅 윈은 50살의 나이에 독립 이후 조직된 양곤시 대학 학생회 연합의 일원으로 1988년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아웅산 수치의 정당인 미얀마민족민주동맹의 주요 멤버로 1990년 5월 양곤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5개월 뒤 체포됐고, 기소와 재판 여부도 불투명하다. 확실한 것은 그가 1991년 1월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검을 본 가족은 그의 몸에 구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주장한다. 미얀마 군부는 그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가족은 체포 전 그가 그런 병의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