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지배 엘리트층의 속임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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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8 17:19 조회1,47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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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4년까지 상황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변화되어 왔는데, 14명의 각료 중 고촉통 전 총리를 포함해 총 8명이 이전 학자 신분이었다. 2005년에는 총 19명 중 12명이 이에 속해 있었다. 이들 중에 리셴룽Lee Hsien Loong 총리를 포함한 5명은 싱가포르 군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학자들이었다. 지배엘리트의 상위 계층을 깊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고찰해 보면, 역시 이와 비슷한 결과가 도출됨을 알 수 있다. 1994년 17명의 사무차관들 중에 12명이 이전에 학자 신분에 속해 있었고 마찬가지로 행정부의 고위공무원 층에 속하는 210명 중 137명이 그러했다.
정부 장학금 제도는 엘리트들을 가려내는 필터의 역할 즉, 재능 있고 학문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 결과에 인종적인 혹은 다른 선입견이 개입되어 작용한다면, 그 선발 결과는 불공평한 분배에 불과할 것이다. 리셴룽 총리는 2005년 5월 대국민 방송에서 “우리는 다민족 사회입니다. 우리는 서로 관용하며 조화를 이루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에게는 능력위주 사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이들이 공평하다고 느낄테니까요”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이자 전 총리였던 리콴유 역시 1989년에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는데, 그는 싱가포르의 말레이 공동체에게 엘리트 교육 제도 내에서 그들이 “모든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엘리트 중심의 실력위주 사회가 진실로 공평한 경쟁의 장이라고 한다면, 중국인들은 소수의 인도계와 말라이계 민족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열심히 일해야만 할 것이다. 다음에 1990년대 싱가포르의 국가 업무의 다양한 부서들의 고위직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살펴보자. (이 자료는 2000년대 초기 로스 워싱톤Ross Worthington이 수행한 리서치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 1991년, 상위 30개의 공기업들 중에 오직 2개(6.7%)의 기업만이 비중국인이 총수직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비중국인들 중에는 말라이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 1998년, 대부분의 공기업계에서 38명의 CEO들 중 오직 2명(5.3%)만이 비중국계였다. (그리고 이들 비중국계 중 말라이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1998년, 법조계와 공기업의 78명 “핵심 인물” 중에 겨우 7명(9%)만이 비중국인이었다. (그리고 비중국인 중 한 명만이 말라이계였다.)
이와 비슷한 결과는 대학에서 입학 허가 후 주어지는 정부 장학금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966년부터 2005년까지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일류 장학금인 대통령 장학금을 수여한 200명의 학생들 중 겨우 14명(6.4%)만이 비중국인이었다. 그러나 이 비율도 그 기간 중 일관된 비율이 아니었다. 여기서 1980년대를 기준으로 하여 시기를 나눴을 때,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14명의 장학금 수혜자 중 10명 즉, 8%가 비중국인이지만, 1981년부터 2005년까지는 이 수치마저도 3.8%로 떨어져 총 106명의 장학금 수혜자 중에 겨우 4명만이 비중국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싱가포르 독립 이후 말레이계에게 주어진 대통령 장학금은 1968년에 단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1987년부터 2005년까지 장장 18년 동안 오직 한 명, 미카일Mikail Kalimuddin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슬림이 대통령 장학금을 받았는데, 실제로 그는 중국계 혼혈이었고 화인학교(화인 고등학교와 화총 초급대학)에서 수학했으며, 그의 모국어인 중국어 상위 코스를 밟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초점을 더 넓혀 접근하여 더 다양한 민족성의 구조를 포함시켜 봤을 때, 1968년부터 2005년까지 통틀어 단 2명의 무슬림만 대통령 장학금을 수혜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