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이중적인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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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3-19 10:56 조회1,31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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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정부는 유엔과 공동으로 2003년에 ‘캄보디아 법원 내 특별재판부’ (ECCC)를 만들어 소위 ‘킬링필드’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진행 중이다. ECCC는 폴 포트(Pol Pot)의 크메르루주(Khmer Rouge)가 1975년 4월 정권을 장악한 이후 1979년 1월 베트남의 침공으로 무너질 때까지 벌인 각종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 그 책임자들을 처벌할 예정이다. 3년 8개월 간 살인, 고문, 기아, 강제노역 등으로 17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프놈펜 왕립학술원의 연구원인 깜마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킬링필드의 후유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캄보디아 모든 곳, 누구에게서나 확인될 정도로 그 상처가 깊습니다. 특히 당시 지식인을 모두 희생시킴으로써 이 사회를 이끌어갈 한 세대가 사라졌습니다. 이는 곧 후대와의 단절을 의미하죠. 모두가 킬링필드에 얽혀들면서 선과 악의 구별이 흐릿해지고, 인간의 양심에 대한 불신 등이 은연중 남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캄보디아 현 정부의 일부 고위관리들도 크메르루즈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자들도 많다. 게다가 ECCC는 국제법과 캄보디아 국내법이 혼용되도록 짜여 있고, 외국인 판사와 내국인 판사 등이 섞여 있는 등 조직과 제도 면에서 절충된 형태인지라, 실제 운용 상 많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깜마톨 씨는 재판이 형식적으로 진행되어 책임자들에게 면죄부가 제공되고 과거사가 어정쩡하게 정리되고 말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킬링필드 재판’에 대해 캄보디아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대개 지식인 계층이다. 일반 서민들은 경제적인 문제에 시달려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사 정리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다. 특히 킬링필드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킬링필드의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가 없거나 있어도 희박하다. 그들은 역사나 정의의 문제보다는 자신의 경제적 앞날에 더욱 신경을 쓴다.
깜마톨 씨는 사람들이 1970년대의 이른 바 ‘2차 킬링필드’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그는 국제사회가 그 전에 있었던 미국 주도의 ‘1차 킬링필드’에 대해서도 공정한 조사를 통해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던 1969-73년 사이에 캄보디아가 베트콩을 지원한다고 보아 캄보디아 동부 지역에 엄청난 양의 폭탄을 퍼부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일본에 퍼부었던 폭탄보다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당시 캄보디아에서 60만 내지는 8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본다. 깜마톨 씨는 미국이 당시 국제적으로 금지된 폭탄도 사용하는 등 국제법을 위반했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물론 세계의 어떤 국가도 미국의 잘못을 제대로 고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향신문 2008/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