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건 10년만에 마침내 판결 받은 마긴다나오 대학살의 주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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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작성일24-04-07 20:45 조회1,68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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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달 암파투안 주니어
비극이 발생한 지 10년 후인 2019년 12월 19일 아침 사법 당국은 필리핀 역사상 최악의 정치적 학살의 주범들에게 가석방 없는 40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2009년 11월 23일, 민다나오 섬에서 일어난 마긴다나오 대학살(혹은 암파투안Ampatuan 대학살)은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필리핀의 가문 간 혈투의 잔인한 문화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마긴다나오 주의 강력한 정치적 세력인 암파투안 가문의 안달(Andal) 암파투안 주니어와 다른 네 명의 가문 사람은 선거에서 경쟁 가문의 도전자를 제거하기 위해 57명을 죽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들 중에는 32명의 기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학살의 가해자들은 시신들을 속이 빈 구덩이에 버렸으며, 경찰은 58번째 희생자의 시체를 찾지 못했다. 이 사건은 100명 이상의 용의자들이 체포되었고, 다른 81명은 여전히 도피 중이다. 법원은 대학살의 공범자 15명에게는 최소 6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50명 이상의 다른 피의자들은 증거 부족으로 석방되었다. 여기에는 그 가문 사람 4명과 수십 명의 경찰이 포함되었다.
판결은 부패와 증인 살인으로 얼룩진 오랜 그리고 느린 과정에 정점을 찍은 것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증인들 중 적어도 4명은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 사망했다. 사건이 지연되는 수 년 동안, 가문의 우두머리 안달 암파투안 시니어(Andal Ampatuan Sr)와 다른 7명의 피고인이 사망했다.
암파투안 가문은 마긴다나오주를 지배하면서, 이 지역의 거의 모든 정치적인 관직을 차지했다. 당시의 글로리아 아로요(Gloria Arroyo) 필리핀 대통령은 이 강력한 가문이 무슬림 반군과의 전쟁에서 사용할 무장 민병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0년 전인 2009년 11월 23일, 암파투안 주니어는 거의 200명이나 되는 무장된 부하들을 이끌고는, 당시 주지사직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에스마엘 망구다다투(Esmael Mangudadatu)의 아내와 자매들과 친척 및 변호사들을 싣고 가던 7대의 차량을 차단했다.
그들은 이 차량들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 교통 체증에 갇힌 그 주위의 다른 차량 두 대의 승객들도 붙잡아 인근 언덕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기계를 사용해 큰 구덩이를 파서 그 속에 희생자들과 차량들을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암파투안 주니어와 그의 부하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희생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그리고 군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자 재빨리 도망쳤다. 군대는 차량 내부에서 피해자의 몸들이 심하게 절단되어 바닥에 누워 있거나 일부 차량과 함께 우물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AsiaNews, 201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