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방콕의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들

번호

222

 

작성자

김동건()

작성일

2017-07-02 20:26:36

추천

0

조회

185

 

방콕의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들

김동건(GP 선교사/태국)

<파키스탄 난민 발생의 이유>

파키스탄 내전으로 정부 기능이 약화되자, 파키스탄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강경 무슬림들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게 되었다. 핍박은 가톨릭 신자들과 일부 온건파 무슬림들에게도 미쳤다. 종교적인 핍박을 받는 이들 파키스탄인은 탄압을 피해 제3국으로의 망명을 바라며, 그 중 상당수는 태국의 방콕으로 들어온다.
태국은 관광객으로 입국이 용이한 편이다. 그들은 주로 방콕 외곽의 하층민들이 거주하는 곳의 원룸 아파트 등에 거주하며, 서방국가들로 이주되기를 기다린다.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삼롱 지역 파키스탄 난민들>

태국은 국제적인 난민 협정에 가입하지 않고 있어, 그들의 신분은 그저 불법 체류자이다. 체포되어 열악한 구치소에 구금되거나 파키스탄으로 송환될 위험에 항상 처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살며, 인근 지역의 태국 교회 등에 출석해 예배하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일부 도움받기도 한다.
삼롱 지역에도 많은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들이 있는데, 그 중 일부가 L교회에 왔다. 그리고 그 숫자는 날마다 늘어갔다. 그 이유는 첫째, L교회도 역시 태국어로 예배를 드리지만, 소속 교단의 풍부한 예전적인 요소가 파키스탄의 가톨릭을 포함한 다양한 교단 출신의 기독교인들에게 그나마 은혜의 통로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 사역자 팀의 한 사람인 찌라차이 전도사가 파키스탄 난민을 적극적으로 돌보았기 때문이다. 사비를 털어 심방을 하고, 병원 치료를 돕고, 주일 교회 오가는 길에 검거되지 않도록 반복해 차량으로 픽업을 해주었다.



결국 태국인 성도와 파키스탄인 성도의 숫자가 비슷해졌다. 예배당은 의자도 부족했으며, 서로 언어와 문화와 그리고 먹는 음식도 달랐다. 태국 사람들은 파키스탄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꺼려하기도 했다. 교회 재정은 늘어나지 않았지만, 주일 식사비용은 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파키스탄 아이들은 태국어로 드리는 예배 시간에 통제가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난민들이 태국인 성도에게 재정적 도움을 개인적으로 요청하는가 하면, 결국 태국인 성도들이 교회에 오지 않거나 점심 식사교제도 하지 않고 돌아가기도 했다. 급기야 L교회 운영위원들이 찌라차이 전도사에게 파키스탄인 성도들을 데리고 나가 따로 예배를 드리도록 권고했다.

<태국 난민교회의 시작>

난민들만의 독립된 교회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찌라차이 전도사는 L교회 담임목사뿐만 아니라 자신이 교제해오고 있던 선교단체의 선교사들 그리고 난민 대표자들과 논의한 후, 최종적으로 난민교회 개척에 착수했다.
과거 난민들이 난민교회 설립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다양한 교단 배경의 난민들이 결국 주도권을 두고 다투게 되어 실패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파키스탄 난민을 사랑한다고 인정되는 찌라차이 전도사가 교회의 담임사역자가 되어 전체 운영을 주관하도록 모두가 기꺼이 합의해 주었다.
모임 장소의 문제는 파키스탄 난민학교의 교실을 주일에 빌려 쓰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약간의 전기ㆍ수도 요금과 아이들 간식을 학교 측에 제공하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2016년 10월 첫 주에 난민들만의 첫 예배를 드렸다. 그 후 그 교실 옆의 작은 공간을 추가로 임대해 교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방콕 OPR(Open Pakistan Refugee) 교회>

그 시기에 난민들을 방문해 도움을 준 한국의 한 지역 교회가 관심을 갖고 계속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 후 태국인 기독교인들과 국제 구호단체들 그리고 선교단체들도 힘을 모아 방콕 OPR 교회를 돕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한국의 지역 교회가 모교회로서 수고를 감당해주고 있다.
OPR 교회는 1) 공예배, 2) 생활 지원(식료품, 의료, 교육), 3) 이민국 구치소 심방(대부분의 남자들이 열악한 감옥에 수감되어 있음), 4) 제3국 및 본국송환 협력을 주사역으로 한다. 현재 OPR 교회 성도들의 절반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주말에는 거주지와 교회, 주중에는 구치소를 중심으로 사역이 진행된다. 현재 매주일 예배에 부녀자와 아이들 중심으로 50명 정도가 참석하며, 절기 때는 더 많다.

<방콕 OPR 교회의 미래>

최근 들어 태국 이민국의 단속이 심해지고 있다. 태국 내 테러 가능성에 대한 제보가 있게 되면, 동남아인들과 외모와 복장이 구별되고 이슬람 국가로 분류되는 파키스탄 난민들이 주 타깃이 된다. 대대적인 단속 기간에는 난민들이 타 지역으로 도피해 한동안 숨어 지내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불시 단속의 경우에는 주로 주변 교회들로 피신한다. 체포된 많은 난민들은 구치소의 열악한 환경(특히 피부병 같은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들이 떠나가는 길은 말 그대로 눈물바다다.
파키스탄에는 더 이상 집도 근거도 없고, 어떤 핍박이 기다릴지 알 수 없다. 근래 파키스탄이 많이 안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떤 난민들은 돌아가느니 차라리 자살을 선택하겠다는 말도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만이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도움으로 서양 국가에 정착한다. 유럽,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다. 종교 핍박으로 인한 난민임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자료(신학교 졸업장, 교단 소속 목회자 증명)가 비교적 풍부한 목회자 그룹이 일반 성도들보다는 UNHCR 심사에 더 유리하다.
전세계적으로 날로 늘어만 가는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태국 정부의 난민정책도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파키스탄 난민들도 태국에 동화해 정착할 의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들을 향한 태국 교회의 시선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기독교 난민 가운데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무슬림에 대한 경계심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키스탄 난민들보다 더 열악한 가운데 있는 산악 지역의 태국인 기독교도를 더 우선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태국 내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의 선교적 의의>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을 돕다보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각별히 염려하시고 돌보심을 자주 경험한다. 이들은 정말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이슬람 국가에서 5~6대에 걸쳐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이들이 이제는 고향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태국을 중간 기착지로 삼아 이 나라에 머무르고 있다. 태국 교회는 여전히 이들을 돕기에 역부족이다. 그리고 이들이 태국 사회에 영적 영향을 주기에는 본인들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태국인들이 파키스탄 난민들을 불쌍히 여겨 쌀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밀을 주식으로 하는 파키스탄 난민들이 태국 빈민들에게 이 쌀을 다시 기부하기도 한다. 파키스탄 난민구호 현장에 태국 빈민들도 참여해 구호품을 함께 받고 또 예배에 참석하기도 한다.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들이 태국을 영구 정착지로 여기지는 않지만, 태국에 머무는 동안 태국인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들을 돕고 있는 분들이 모인 적이 있었다. 보통은 한두 가정을 돕고 있었는데, 모두 방콕 OPR 교회의 협력 시스템과 모임의 규모에 놀라워했다. 방콕 OPR 교회의 미래가 곧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또 이 디아스포라를 통한 세계선교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나침반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의견남기기  

 

no

이름

제                   목

작성일

조회

추천수

76

노종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크리스찬-무슬림 관계 포럼

2017-10-15

133

0

75

김동건

방콕의 파키스탄 기독교 난민들

2017-07-02

186

0

74

김동건

태국의 큰 역사적 변화와 태국 교회의 전망

2017-05-13

322

0

73

운영자

다니엘 맥길버리 선교사(5)

2017-05-13

177

0

72

운영자

다니엘 맥길버리 선교사(4)

2016-10-21

36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