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의 땅 끝

번호

222

 

작성자

문권익()

작성일

2016-01-28 15: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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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칼럼 118호(2016/1/28)

나의 땅 끝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그러니까 필리핀에 선교사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동역했던 선임선교사님, 그리고 몇몇의 현지 목회자들과 함께 산족들이 모여 사는 한 오지 마을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곳은 전기도 병원도 수도도 없는 매우 깊은 오지 중에 오지였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따(Aeta)라고 불리우는 필리핀 전통 부족인데 피부가 마치 아프리카 흑인들처럼 검고 신체가 왜소해서 같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조차도 무시 받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방문한 목적은 그들에게 복음이 얼마나 소개되었는지, 그리고 선교사가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영적 수고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우리 일행은 새벽 5시경에 첫 집결지인 강 나루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말이 나루터이지 물도 없고 배도 없었다. 이유는 20여년 전 피나투보라는 큰 화산이 터졌을 때 엄청난 양의 화산모래가 분출되었는데 그 때 그 화산에서 나온 모래가 이 드넓은 강을 8미터 이상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벽 미명을 뚫고 앞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모래로 뒤덮힌 강을 거슬러 걷기 시작했다. 행군은 멈추지 않았다. 가도가도 끝이 없었고 보이는 것은 온통 모래와 자갈 뿐이었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쉬기만을 학수고대 하는데 얼추 3시간 정도 지나니까 한 필리핀 목사님이 잠깐 커피나 한잔 하자며 작은 개울가 옆에 메고 있던 베낭을 벗어 놓았다. 나는 속으로 ‘살았구나’를 외치며 내 등짝 만큼이나 넓직한 돌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러자 동시에 여러 현지 목사님들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괜찮으냐며 나의 몸 상태를 염려해 주는데 고맙기도 했지만 살짝 약도 올랐다. 왜냐하면 나는 트랙킹에 어울리는 신발을 신고도 절절 매는데 그들은 슬리퍼를 신고도 그 긴 시간을 무슨 이웃집 마실 가듯이 걷기 때문이었다. 동행한 현지인들은 마른 나무 가지들을 모아 불을 놓고선 그 위에 가지고 간 주전자를 걸고 개울물로 물을 끓였다. 몇 마디 우스개 소리와 함께 커피를 한잔씩 후루룩 비우는데 걸린 시간은 그저 십여 분에 불과했고 우리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우리의 목적지는 길 떠난지 5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한국에서 온 이 덩치 큰 허연 선교사를 놀리고 싶었던지 어떤 필리핀 목사 한 사람이 "가끔 이 길에 반군(NPA : New People’s Army)이 나타난다" 며 무슨 탑 시크릿이라도 알려주는 양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말한 사람 성의를 보아서 "정말이냐" 며 짐짓 놀래주는 시늉을 했더니 이 양반이 한술 더 뜨기를 "그러나 돈만 주면 쏘지는 않으니 너무 걱정 말라" 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말 타고 돌아 다닌다는 반군 보다 유난히 작은 눈으로 나를 겁주던 그 현지 목사가 더 싫었다. 어느덧 준비해 간 물도 다 떨어질 즈음, "오늘 중으로 도착하는 것이 맞기는 한 것이냐"고 동행한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그는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저 태양이 당신의 정수리 위에 이를 때 도착한다"는 아프리카식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도대체 몇 시쯤일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마을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정말 정확하게 태양이 내 머리 위에 있었고 시간은 정오였다.


까바뚜안. 우리가 도착한 마을 이름이었다. 얼마나 깊은 곳에 숨어 있었는지 그야말로 전쟁이 나도 모를 정도로 깊은 산속에 숨어 있었다. 역시 듣던 데로 전기도 없었고 수도도 없었다. 밤에는 호롱불을 밝히고 저녁을 먹어야 했고 8시면 모두가 잠을 자야 하는 그런 마을이었다. 내가 마을에 들어서자 마을 사람들은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을에 외국인은 내가 처음으로 방문했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어떤 꼬맹이는 나를 보더니 기겁을 하며 울면서 도망가기도 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구한말에 조선 땅에 나타난 백인 선교사를 본 한국사람들이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맙게도 마을 주민 가운데 한 명이 대나무로 지은 오두막 집을 내어 주어서 거기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걸은 탓에 몸이 이만저만 피곤한 것이 아니었지만 의외로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대나무 창을 통해서 새까만 밤하늘이 보였다. 그 밤하늘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만약 주님이 여기서 나더러 이곳에서 살라고 하시면 과연 내가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기도 없어서 밤이면 희미한 호롱불로 어둠을 밝혀야 하고 핸드폰도 충전할 수 없는 곳, 우기가 시작되면 말라리아로 해마다 몇 명씩 죽어나가고 병원도 없어서 응급환자가 생기면 아무 대책이 없는 곳, 과연 내가 이런 곳에서 아이들과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니 어느새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내 가슴에 굴러 들어왔다. 그날 밤 나는 결국 그 돌덩이 하나를 부둥켜 안은 채 잠이 들었다.

까바뚜안에는 시계가 없다. 시계가 없다 보니 아무도 시간을 묻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쫓는 사람도 없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도 없다. 시간 때문에 어색해 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는데 바로 나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반복적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 곳에서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시간의 속박과 통제에 길들여진 삶을 살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시계가 없다고 해서 시간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시계는 없지만 나름 그들도 자연이 제공하는 시간에 따라서 움직이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알람소리가 아닌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맞춰 잠에서 깨며 노동의 강도에 따라 식사할 때와 잠자리에 들 때를 정확히 안다. 까바뚜안에서 가장 먼저 하루가 시작됨을 알리는 동물은 닭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돼지들이 울고 끝으로 개들이 짖는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닭 울음 소리에 다 일어나지만 나는 피곤했던지 닭과 돼지를 건너뛰고 개가 짖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어났다. 집 밖으로 나와보니 마당을 쓸던 동네 아낙 몇몇이 환한 얼굴로 나에게 굿모닝을 건넨다. 망고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 사이로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들고 있었다. 틀림없는 굿모닝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작정 굿모닝만을 즐길 처지가 아니었다.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집 주위를 둘러 봐도 화장실이 눈에 띄질 않아서 나를 재워준 집주인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집주인은 멋쩍게 웃으며 화장실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그가 대답하길 ‘화장실은 따로 없고 아무데나 한적한 곳에 가서 그냥 볼 일 보고 나뭇잎이나 흙으로 덮으면 된다’ 는 것이었다. 아..!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어이만 탓하고 있기에는 나의 ‘내부사정’ 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여차하다간 옷 입은 채로 상상할 수 없는 초유의 재난을 겪을 수도 있겠다 라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나는 일단 경보로 가장한 달음질로 무작정 어디론가 향했는데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서 폭이 1미터정도 되는 작은 도랑을 발견했다. 감사하게도 도랑 양쪽으로 적절한 높이의 갈대가 자라 주어서 몸을 은폐하기에도 그만이었다. 도랑은 폭이 좁아서 그런지 물살이 매우 빨랐다. 그리고 도랑 양쪽 가장자리에 큰 돌이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는데 나는 그걸 보고 나 말고도 사람들이 이 도랑에서 큰 일을 치른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신속하게 두발을 양쪽 돌에 올리고 격하게 바지와 속옷을 동시에 내리며 주저 앉았다. 동시에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들이 주루룩 내 콧잔등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나는 물과 함께 사라져가는 나의 근심 덩어리들을 바라보며 ‘내가 또 자연에게 몹쓸 짓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무거웠지만 곧이어 이런 놀라운 천연 비데를 갖춘 화장실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했다. 볼 일을 마치고 바지를 추킬 때가 다 되어서야 나는 혹시 주변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설마 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 보았는데 불길한 예상은 현실이었다. 불과 십 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열살 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물소 잔등에 올라탄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마음 같아선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라고 묻고 싶었지만 내가 원치 않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 두려워 차마 묻질 못했다.

고구마로 점심을 때우고 무료함을 달래려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 금새 아이들이 몰려든다. 그리곤 뭐가 그리 신기한지 아이들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면 나는 준비해 간 사탕을 꺼내어 하나씩 주는데 게 중에는 용감하게도 하나 더 달라고 하는 아이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대개가 집에 있는 동생을 주기 위함이다. 내가 그걸 모를 리 없기에 몇 개를 더 쥐어 주면 아이들은 마치 다람쥐처럼 집으로 내 뺀다. 어느덧 구름에 달 가는 캄캄한 밤이 되어 우리 일행은 얼마 되지 않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도집회를 열었다. 비록 전기는 없어서 작은 호롱불 두어 개로 주위를 밝히는 밤이었지만 그날 밤, 어두워서 우리가 못 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까만 이마에 반짝이는 땀방울도 보았고 별보다 더 반짝이는 눈동자도 보았으며 그 눈동자에 비친 주를 향한 그들의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 찾아왔다. 새벽 4시에 우리 일행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달구지 앞에 모였고 우리는 또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그렇게 걷는 도중에 동이 텄고 새벽 미명에 드러난 주위의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발에 물집이 잡힌 내가 걱정되었던지 우리 일행을 따라오는 소 달구지에 타라고 강권했다. 나는 그럴 수 없노라고 사양했지만 결국 못이기는 척 할머니 세분이 탄 달구지에 올라 앉았다. 할머니들은 고맙게도 내가 앉을 곳을 비워두었다. 그 곳은 소의 꽁무니를 바라보는 자리인데 은근히 자세가 잘 나왔다. 여차하면 뒤로 누울 수도 있었다. 나는 외국인을 배려한 할머니들의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여러 차례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불과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왜 할머니들이 뒤로 누울 수도 있는 이 좋은 자리에 앉지 않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달구지를 끌던 소는 경사 진 비탈을 오르느라 힘을 지르며 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난 불안했다. 왠지 조만간에 엄청난 일이 벌어질 듯한 예감이 들었다.

아!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소는 그렇게 두어 번 방귀로 본방을 예고하더니 드디어 엄청난 양의 변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소의 배설을 불과 30 센티미터 눈 앞에서 목격해야 하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맞았는데 정말이지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제서야 서로 묘한 미소를 교환하며 웃음을 참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왜 할머니들이 그 자리를 비워 놓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이 정신 나간 소는 똥을 몸 밖으로 내 보내는 동시에 자신의 굵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오는 똥을 후려치는 기이한 퍼포먼스를 연출하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우변의 파편이 내 옷으로 튀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아예 박장대소를 했고 옆에서 걸어가는 일행들도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최대한 뒤로 젖혔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내리고 싶었지만 양쪽 발바닥에 동전 만한 물집이 터져서 걸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내릴 수도 없었다. 다행히 가지고 간 물티슈가 있어서 급한 대로 닦아 내기는 했지만 소는 그 후로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서너 번을 더 싸 제끼는 기염을 토했고 나는 그냥 토했다

나는 까바뚜안을 다녀 온 후 한 동안 내가 가야 할 땅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를 따라 다닌다. 오늘날 모든 선교사가 가야 할 땅끝은 오래 전 요나가 가려고 했던 극단(極端)의 도성 다시스가 아니다. 비행기로 이틀하고 반나절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요즘 같은 세상에 땅끝에 대한 지리적, 공간적인 해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제는 선교사가 갈 수 없는 땅끝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가야 할 땅끝이 있는데 그 곳은 우리가 ‘갈 수 없는 곳’ 이 아니라 우리가 ‘가기 싫은 곳’ 이다.

우리가 가기 싫은 땅 끝은 비단 까바뚜안처럼 전기나 화장실이 없는 곳 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가기 싫은 땅끝은 사방 천지에 널려 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나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는 곳, 사람들은 예의도 없고 무례할 뿐더러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곳, 빌려간 것을 갚지 않고 없는 말을 지어내서 늘 나의 인내심을 자극하고 나의 분노를 시험하는 곳, 물건을 살 때면 늘 값을 더 받으려는 상인들과 짜증나는 실랑이를 해야 하는 곳, 노상 잔돈이 없다며 거스름 돈 주기를 싫어하는 트라이시클 기사들 때문에 일일이 잔돈을 늘 준비해야 하는 곳, 아무데나 소변을 봐서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고 상상할 수 없는 큰 소리로 가라오케를 불러 제껴 잠을 못 자게 만드는 곳, 아끼는 나의 자동차에 돌멩이로 낙서를 하는 코흘리개를 붙잡아도 훈방조치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곳, 신발 속에서는 주먹만한 개구리가 나오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혹시나 집안에 뱀이 들어 오지는 않는지 신경 써야 하는 곳, 일년 내내 땀띠와 싸워야 하며 어쩌다 오토바이가 고장 나면 마닐라에서 부품이 오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곳, 그 곳이 바로 오늘 내가 가기를 주저하는 우리 집 대문 밖에 펼쳐 진 ‘나의 땅끝’이다.

그러나 우리네 땅끝살이가 고단할 때, 그래서 두고 온 고향이 그리워 마음에 횅한 칼바람이 들이칠 때 우리 보다 먼저 이 황량한 땅 끝에 선교사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궁극(窮極)의 지존(至尊)을 버리시고 겸손한 비하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버리심’을 통하여 텅 빈 이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채우심’을 만난다. 그 분의 그 은혜로운 채우심이 오늘 이 대문 밖 조차 나서길 주저하는 고단한 선교사의 빈 들 같은 삶도 채우시길 소망해 본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3:16-

필자소개
2005년에 필리핀으로 파송되었으며 지금은 별이 후두둑 떨어지는 잠발레스 이바에서 조성임 선교사의 지도편달에 힘입어 캠퍼스쳐치사역(Campus Church Ministry)을 하고있다. MK로는 모세를 닮은 유준이와 여호수아를 닮은 강준이가 있다. ▒ moonkon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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