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맡기는 처세술

번호

222

 

작성자

문권익()

작성일

2015-11-01 17: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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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칼럼 105호(2015년10월29일)

우리는 첫 텀 4년을 인터넷 없이 살았다. 인터넷이 싫어서가 아니라 당시 우리가 살던 살던 집이 조금 외딴 곳에 있었고 게다가 주변에 큰 나무도 많아서 안테나를 통해 들어오는 무선송출방식의 필리핀 인터넷이 우리 집까지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넷이 없다고 크게 불편할 것은 없었다. 메일은 이틀에 한번 정도 동네 인터넷 카페에 가서 확인하면 됐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필리핀 뉴스를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바로 070전화였다. 아내가 070전화로 한국에 사는 언니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싶어도 인터넷이 없어서 연락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불편했다.
2011년 1월, 첫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사역지로 돌아 온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인터넷을 파는 동네 통신사 오피스였다. 혹시 우리가 필리핀을 비운 사이 인터넷 시그널이 좋아져서 우리 동네에도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마흔을 넘긴 듯 아닌듯한 여성 매니저가 우리를 반겼는데 그녀는 우리의 주소를 확인 한 후 곧바로 난색을 표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시그널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그널은 이전보다 좋아졌는데 설치가 불가능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곳은 고작해야 8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 이었는데 그 회사에서 지원하는 인터넷이 겨우 10 가구 에게만 보급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매니저는 일단 신청은 받겠지만 사용자 중에서 누군가가 이사를 가던가 죽어야 당신 차례가 돌아 올테니 우선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집에 돌아왔다. 인류가 경험하는 많은 기다림 속에 누군가 이사 가거나 죽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허망한 기다림이 또 있겠냐마는 우리는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우리 부부는 그날 밤 정말 진지하게 기도했다. 차마 신앙인의 양심상 누군가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주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만 할 수 있으시거든 이사 가는 사람이 나오도록 해 주십쇼’ 라고 기도했다. 그리곤 나는 내가 한 기도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라고 스스로 화답했다. 과연 이런 기도도 주님께서 들어주실까 하는 상식에 기반을 둔 의문도 살짝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정말 인터넷이 필요했기에 그날 밤 고생하는 선교사를 불쌍히 여겨달라며 하나님의 특별하신 편애(?)를 구했다.
다음날 오후 나는 그 통신회사 매니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오늘 당신들이 사는 마을의 누군가가 이사를 간다고 인터넷을 해지해서 당신들 차례가 왔으니 생각이 있으면 계약금을 가지고 오라’ 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몇 초의 시간을 멍하니 흘려 보냈다. 하나님의 전격적인 응답하심에 감격한 우리는 할렐루야를 연발하며 펄쩍 펄쩍 뛰었는데 그것은 거의 공중부양에 가까웠다. 우리는 기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기도할 때 함부로 기도해서도 안되겠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우리가 누군가 이사를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동네사람 하나를 쥐도 새도 모르게 데려가 달라고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냉큼 돈을 챙겨서 사무실로 한걸음에 달려가서 인터넷을 계약했고 그로부터 며칠 뒤 드디어 인터넷을 집에 달 수 있었다.
이 오매불망 인터넷 설치 사건은 우리가 선교지에서 응답 받은 주님의 응답 가운데 대표적인 레파토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도 선하셔서 때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환란에서 구하시고 도우신다. 우리는 선교지에서 이러한 경험 역시 많이 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몇 해 전 강준이가 이름도 기괴한 '가와사끼'라는 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며칠 동안 먹였는데도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다시 병원에 갔더니 뜻밖에도 의사는 가와사끼라는 병이 의심되니 서둘러 큰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던 시골 마을에는 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간단한 짐을 꾸려 이바 보다 큰 도시의 종합병원으로 향했는데 그때가 토요일 오후 3시경이었다. 두번째 도착한 병원의 소아과 의사는 당시 외진 중이었고 오후 6시경에 병원에 온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그리고 의사는 간호사를 통해서 약이 있다는 말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일단 강준이를 입원시키고 의사를 기다렸다.
저녁 6시가 넘어서 요란한 화장으로 얼굴을 데코레이트 한 중년의 여의사가 들어오더니 강준이를 훑어보곤 가와사끼가 맞는데 지금은 약이 없으니 마닐라에 약을 주문하고 하루를 기다리자고 말했다. 의사는 약이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외국인라는 사실을 알고 일단 잡아두고 보자는 식으로 약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가와사끼라는 병은 발병 7일안에 약을 사용해야 후유증으로부터 안전한 병인데 그날이 바로 강준이가 병이 생긴지 6일 째 되는 날 이었다. 우리는 환자를 놓고 얄팍한 계산을 하는 의사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조금도 지체할 수 없어서 강준이의 링거를 빼고 마닐라를 향하여 다시 차를 몰았다. 강준이는 이미 고열에 6일 동안 시달려서 간이 부어서 배가 불룩 나온 상태였고 말수도 현저히 줄었다. 감사하게도 마닐라에서 사역하시는 선배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마닐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 강준이를 입원 시킬 수 있었다.
나는 강준이가 입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내를 병원에 남겨둔 채 다시 유준이와 함께 6시간 떨어진 우리의 사역지 이바로 돌아와야만 했다. 왜냐하면 몇 시간 뒤면 주일예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 이바로 오는 도중에 동이 텄고 그 날 아침 주일예배에는 단 두 명의 성도가 출석했다. 그 이유는 공교롭게도 필리핀의 복싱영웅 파키야오라는 권투선수가 타이틀매치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두 명의 성도를 놓고 주일설교를 했다. 예배를 마친 후 나는 옷을 갈아 입기 위하여 잠시 집에 들었다. 그때 내가 집에 들러서 안 사실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이틀 동안 내가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전혀 졸립지가 않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틀 간 물을 먹지 않았는데 전혀 목이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심리적으로 극도의 긴장을 느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강준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데 나는 아내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야 했는데 그것은 담당 의사가 아직 병원에 도착하지 않아서 입원한지 10시간이 넘었는데도 강준이에게 약이 투여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이 새카맣게 타 들어 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강준이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울먹이는 아내의 음성을 희미하게 들으며 전화를 끊은 나는 안방에서 무릎 꿇고 강준이를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빨리 마닐라로 다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그랬는지 굵고 짧게 ‘잠시’만 하려던 기도였는데 기도를 하면서 썩어 냄새 나는 핏물 같은 나의 죄를 보기 시작했고 이어서 회개와 통곡이 이어졌다. 나는 죄에 물든 내 자신의 너무 미워서, 아니 그 동안 그 죄를 정직하게 뉘우치지 않고 살았던 내 자신이 미워서 내 스스로 뺨을 때려가며 통회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흐른 듯 했다.
문뜩 인기척에 눈을 들어보니 유준이가 방문 앞에서 울부짖는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유준이를 힘껏 안으며 동생 강준이가 곧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마닐라로 향했다. 감사하게도 마닐라로 가는 사이 의사가 도착해서 약을 사용할 수 있었고 강준이는 약이 주입되자 마자 거짓말처럼 열이 떨어지고 혈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강준이는 그렇게 꼬박 3일을 채운 후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강준이가 병이 나았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뻤으나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금액의 치료비 청구서가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단 3일을 입원했을 뿐이데 병원이 우리에게 청구한 금액은 한화로 약 8백만원 가량이었다. 처음에는 진료비 뒤에 실수로 숫자 ‘0’ 이 하나 더 붙은 줄로 알았는데 실수가 아니었다. 아내나 나나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뭔가 아무 액션이라도 취해야 할 것만 같아서 병원 원무실로 향했다. 여러 명의 직원들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일단 가장 인상이 좋아 보이는 직원을 찾아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 곧 극단적인 저자세로 우리의 사정을 말했다.
주절주절 많은 말을 했지만 요지는 ‘우리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선교사인데 금액이 너무 많이 나왔으니 한 절반만 깎아 주면 백골이 난망에 성은이 망극이겠소’ 라는 것이었다. 의외로 진지하게 나의 사정을 들어 준 그 직원은 ‘그럼 나 보다 더 높은 책임자와 한번 상의해 보겠다’며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갔다. 나는 속으로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최소한 2백 만원에서 3백 만원 정도는 깎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돌아 온 그 인상 좋은 직원은 병원 측에서 나의 사정을 이해해서 어느 정도 금액을 깎아 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나는 절만 안 했을 뿐이지 거의 절에 가깝게 머리를 숙이며 그에게 연신 땡큐를 연발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그럼 얼마를 내면 될까요?" 라고 물었다. 그로부터 돌아 온 대답은 이랬다. “선교사님이라고 하시니 특별히 3천페소(8만원)를 깎아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숫자 0이 하나 빠졌겠거니 생각하고 다시 ‘얼마라고요?'라고 물었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3천페소’ 라고 좀 더 천천히,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최소 2백만원 이상을 기대했던 나는 8만원이 웬말이냐며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원무실을 나왔다. 아내와 강준이가 있는 병실로 가야하는데 발걸음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이런 순간에 한 대 태우는 게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곧이어 심한 부끄러움을 동반한 후회가 마치 폭풍처럼 밀려왔다. 그것은 바로 내가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였다. 그렇게 비굴하게 병원비를 깎아 달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실 것인데 선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은 믿지 못하고 사람에게 비굴하게 도움을 구한 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 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그 처절한 부끄러움은 얼마 걸리지 않아 하나님께서 곧 뭔가를 하실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당시 우리에게 있던 현찰은 모두 2백만원 뿐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전 재산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6백 만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채워졌다. 강준이가 입원한 사실은 한국에 계신 나의 어머니에게만 알렸을 뿐인데 한국에서 필리핀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갑자기 도움의 손길들이 날아 들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신묘막측하신 도우심의 손길로 인하여 정확하게 진료비를 모두 지불하고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강준이의 병이 낫기를 위하여 기도는 했지만 병원비를 놓고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일단 병원비까지 우리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설마 병원비 없어서 병원 밖으로 나가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구체적으로 기도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 특유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셨다. 믿음과 기도는 어쩌면 검의 양날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시에 나는 이 일을 통하여 믿음은 기도를 온전케하고 기도는 믿음을 풍성케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도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 나더러 기도를 한 단어로 정의 하라면 나는 기도는 ‘Entrustment’ (위임)라고 정의하고 싶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기도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교회는 아침경건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6시50분에 교회 문을 열면 등교하기 전에 학생들이 교회에 먼저 와서 몇 장의 성경을 읽고 기도하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시간인데 사실은 학생들보다 우리 부부가 더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왜 이 좋은 시간을 진작부터 갖지 못했는지 주님 앞에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는 아침마다 하는 이 Morning Devotion 시간에 내가 할 수 없는 모든 일을 그 분께 맡긴다. 너무 무거워서 나는 들 수 없는 사역적인 짐들을 맡기고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쌓여만 가는 개인적인 고충들을 그분께 맡긴다. 최근에는 나의 뇌(brain)를 그분께 맡기는 기도를 하는 중인데 그 이유는 나의 뇌가 더 이상 용서와 사랑에 관계된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이 ‘뇌분비계통질환’ 은 매우 고질적인 질병이지만 그러나 나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이 나의 브레인조차 치료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entrust) 이 영적 작업은 나의 삶을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전능자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내가 모든 면에서 무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혹자는 자신이 할 일은 하지도 않고 기도만 하면 능사겠냐고 묻기도 하겠지만 현재로서 내가 나에 대해서 아는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이다. 따라서 나의 이 ‘맡기는 사역’ 은 직무에 대한 회피도 아니며 의무에 대한 기피도 아닐뿐더러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롭고 탁월한 영적 처세술인 것이다.
마음 같아선 나날이 늘어만 가는 나의 허리둘레도 그 분께 맡기고 싶은데 이 부분은 왠지 나의 역할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에 대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의 신학적 소견이 궁금하다.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2-

필자소개

2005년에 필리핀으로 파송되었으며 지금은 별이 후두둑 떨어지는 잠발레스 이바에서 조성임 선교사의 지도편달에 힘입어 캠퍼스쳐치사역(Campus Church Ministry)을 하고있다. MK로는 모세를 닮은 유준이와 여호수아를 닮은 강준이가 있다. ▒ moonkon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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