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레이시아 선교50년 기념 특별기고 ①

번호

222

 

작성자

노종해()

작성일

2015-09-30 22: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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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선교50년 기념 특별기고 ①

떠돌이의 순회선교 30년을 돌아보며
2015년 09월 02일 (수) 13:53:38 /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선교사, 그들은 누구인가?

첫째, ‘떠돌이’(Wandering)들이다. 예수님도 ‘떠돌이’로 두루 다니시며 전도하셨고(마5:23-25), 제자들도 ‘떠돌이’로 부르시고, 분부하셨으며(마10:1-42), 사도 바울도, 초대교회 전도자들도 ‘떠돌이’였다. 고향, 친척, 부모, 형제, 모든 지위, 신분을 버리고 그분의 뜻을 가슴에 품고, 아무 보장도 안전도 없는 세계로 떠나는 ‘떠돌이’인 것이다.

둘째, ‘떠나가는 사람’들이다(Leaving). 떠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성도의 모임, 공동체’(교회)를 이룬 뒤 ‘떠나가는 사람’(leave for missionary work)들이다. 사도 바울은 떠돌이 선교사(Wandering Missionary)로 빌립보, 고린도, 에베소, 데살로니가, 안디옥 등 ‘성도의 모임, 공동체’를 이뤘으며, 전도인, 사역자를 세워 공동체를 맡기고 흔쾌히 그분의 뜻을 향해 떠났다.

셋째, 비져너리(Visionary)들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바라보며 그 뜻을 품고 나가는 비져너리다. 현실은 비참하고 처절하다. 시련과 고난이며 비난과 박해가 도처에서 내외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실에 처한다. 그럼에도 그분의 뜻을 품고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비져너리인 것이다.

‘떠돌이’의 순회선교 착수

1985년 4월 4일, ‘한국 감리교 선교100주년 기념대회’때 역사적인 연합 연회가 모인 자리에서 서울연회로부터 일본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담임목회를 하던 온양온천교회를 사임하고 선교사로 결단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정부는 재일 동포들의 법적지위 향상 운동을 문제로 삼아 한국 기독교 5개 교단에서 파송하는 선교사를 입국하지 못하도록 막아서 현지 부임을 기약 없이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일본 선교를 준비하며 기다리던 1988년 6월경 본부 선교국의 제안으로 파송지를 변경하여 ‘말레이시아’로 가게 된다.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결심이 있었고, 선교사 신분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로울 때가 아니다). 1988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 독립일에 선교사 자격으로 말레이시아 연방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였고 30년 ‘떠돌이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하는 중 ‘Special’이란 도장과 함께 2주간 체류허가를 받았다. 처음엔 특별대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 한다. 선교사로서 이슬람 땅에 도착한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1988년 10월, ‘말레이시아 감리교회’(Medistist Church of Malaysia) 본부를 방문하여, 황 감독(Bishop Fang)님을 접견하고, 선교사 도착 인사 드렸으며, 12월에는 ‘말레이시아 감리교 총회’에도 참석하여, 감독님의 소개와 환영 속에 인사하는 등 현지 교회와 선교협력을 이뤄갔다.

선교의 기지인 선교센터 설립

우선적으로 선교센터가 될 수 있는 대지와 건물을 찾았다. 임대 주택과 현지교회를 사용하며 어떻게 선교의 기지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무 것도 없는 맨땅, 이슬람 국에서 선교센터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말레이시아 감리교 감독 데니스 더튼(Bishop Rev, Dr Denis Dutton)으로부터 선교센터 장소를 소개 받았고, 이때부터 선교지를 방문하는 한국의 목회자, 선교동역자들을 안내하여 남의 땅, 건물 앞에서 “이 땅을 선교센터로 주십시오.” 하며 함께 기도하였다.

1989년 ‘말레이시아 한인교회 창립 7주년 기념집회’를 개최하며 한국교회를 초청하였다. 기도는 이루어져 9월에 계약하고, 10월에 대지 500 평, 2층 단독 주택 건물을 매입하여 수리 공사를 마치고 입주하였으며, 1990년 3월 등기완료하고, 8월 18일 ‘선교센터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동남아 선교센타’에서 초교파적으로 선교단체들과 선교사들이 협력을 이루어 나가게 되었다.

선교는 교회 중심이어야

나의 선교관은 “선교는 교회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선 말레이시아 현지 기독교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려 노력하였다. 말레이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선교현장조사와 교회현황을 조사하며 선교협력을 모색하였다. 각 교단 총회, 지방회 뿐만 아니라, 선교 세미나, 목회자 집회 등에도 참여하였고, 특별 집회와 절기 때마다 참여하였다. 또한 ‘교회협의회’(NCCM), ‘복음주의협의회’(NECF), ‘말레이시아 기독교 연합회’(CFM) 집회에도 참여하였다. ‘말레이시아 신학대학’(STM), ‘말레이시아 성서공회’ 등 기관도 찾아갔다. 말레이시아 교계 지도자들이 나의 신분을 보장해 주었고 현지교회에서도 환영해 주어, 선교 협력을 공고히 하고 현지선교에 매진 할 수 있었다.

이슬람권 선교사는 신분을 노출 시켜서는 안 된다. 또한 선교지 언어를 익혀야 한다. 나는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여 우선 국립대학인 ‘말라야 대학’(University of Malaya), ‘말레이어 언어’(Bahasa Malay)과정에 등록하였고, 학생증을 발부 받았다. 이 학생증이 현지에서 나의 신분을 보장해 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또 운전 면허증도 좋은 신분증이 되었다.

현지교회와의 긴밀한 협력관계 속에서 교포 선교도 전국으로 확장하게 되었고, 정글 원주민 오랑아슬리(Orang Asli) 셍오이족(Sengoi) 선교, 동 말레이시아 사바, 사라왁 주(Sabah, Sarawak) 원주민선교, 도시 선교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선교센터에서는 현지인 교회와 전도인 양성 성경학교인 ‘교역신학원’도 개척 시작되었고, 아내 최완숙 선교사는 현지교회들의 강단 꽃꽂이 강습회로 좋은 반응을 받아 선교에 기쁨을 얻기도 했다. 1993년에는 말레이시아 최초 ‘한인유치원’도 개교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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