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속으로 다가가기(1)

번호

222

 

작성자

편미선()

작성일

2015-09-05 20: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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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칼럼 65호 (2015년1월20일)

문화속으로 다가가기1

필리핀의 날씨는 비가 오지 않는 6개월간의 건기와 비가 자주 오는 6개월간의 우기철로 나뉜다. 어느 해 우기철 이었다. 약 2주가량 쏟아 붓듯이 내린 비로 인해 바다와 강이 만나는 삼각주에 위치한 한 마을이 교회를 포함하여 물에 잠겨 마을자체가 아예 없어져버렸다. 가까스로 몸만 피한 수재민들은 인근의 학교나 좀 높은 위치에 자리한 이웃집으로 피신을 하였다.

급한대로 온 성도들과 마음을 모아 옷가지들과 생필품 등 가장 시급한 음식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 바랑가이(필리핀의 도시와 자치체를 구성하는 최소의 지방 자치 단위이며, 마을 지구 또는 구역을 나타내는 고유의 필리핀어/편집자주) 캡틴(리더) 한테 물으니 몇가지 품목을 적어 주었다. 품목을 살펴보는 중 나는 적잖이 실망되는 품목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커피와 설탕이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이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품목은 적어도 쌀, 빵등 우선 끼니를 연명해야 하는 품목만을 기대했는데 커피라니... 잠깐 동안 할말을 잃었다.

어쨌든 돕는 입장에서 그들이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사 주는것이 나을 것 같아 적어준 품목대로 물건을 구입하여 전달해 주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약간의 빵을 사서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저마다 컵을 들고 무엇인가를 마시고 있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커피였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빵도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궁금해 물으니 커피에 설탕을 듬뿍타서 한잔 마시면 앞으로 두 세시간 정도 배고픔을 참을 수 있고, 빈 속에 속 쓰림을 달래주는 특효약이라고 했다. 형편이 좋지 않으니 먹고 싶을 때 풍족히 먹을 수 없는 이들이 임시방편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커피와 설탕 이었던 것이다. 커피가 우리에겐 마셔도 되고 안마셔도 되는 그저 기호식품에 불과한 음료지만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음식이자 약이었던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의 손과 발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손톱과 발톱이 깨끗하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손톱에는 매니큐어, 발톱에는 페디큐어를 칠하고, 남자들의 손. 발톱도 깨끗히 다듬어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늘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쌀 1키로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을 손. 발톱 정리하는데 쓰는 것을 보며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정서라면 여름 한철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을 신기위해 손. 발톱을 청소하고 매니큐어를 칠하여 기분전환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내 나이의 여자들은 요란한 느낌이 싫어 그냥 손. 발톱을 깎는 정도이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한 자매가 있다. 어릴적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정상적이지 않아 휠체어를 의지해 생활하는 자매다. 이 자매를 통해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 주도 빠짐없이 매 주 예배에 참석하는 귀한 자매인데 집에서 부업으로 다른 사람들의 손. 발톱을 손질해주는 일을 한다. 이 자매가 교회를 오면 내 손과 발을 주시해서 보는지 자기집에 들르면 손. 발톱을 청소해주겠다고 당부하여 하루는 일부러 심방도 할 겸해서 들렀다. 약 한 시간 가량 내 손.발톱을 말끔하게 다듬어 주고 또 예쁘게 칠도 해주면서 하는 말이 필리피노들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제일먼저 손. 발톱을 주시해서 보고 깨끗하지 않으면 아무리 목욕을 했더라도 지저분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손. 발톱 손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 년 내내 슬리퍼나 샌들을 신어 발가락을 항상 남에게 보여야 하는 날씨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았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마치 풀리지 않던 숙제가 해결된 기분이었다. '그래 여기는 필리핀 땅이고, 이들의 삶의 방식을 뒤집으려 온 것이 아니기에, 이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줘야지...' 요즈음엔 내 발톱에 예쁜색의 페디큐어가 칠해져있다. 그리고 그들은 내 발톱의 색이 바뀔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예쁘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어느 날 한국의 목회자 몇 분이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선교지를 방문하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중간에서 소개해주신 분이 그분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주시면서 한국에서 제법 큰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이라고 귀띔해주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본국에서 본부사역중이어서 남편만 시간을 내어 그분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큰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이라고 강조하신 속 내용은 잘 모셔야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현지인 성도들은 한국음식을 할 줄 모르고, 또 우리 지역엔 이렇다 할 좋은 식당도 없다. 하는 수 없이 교인들 몇몇에게 음식을 준비하되 돈 생각하지 말고 푸짐하게 여러가지를 준비하라고 전화로 신신당부를 했다.

얼마 지나 손님들을 모시고 사역지에 다녀 온 남편이 당황스러워서 혼이 났다면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듣는 나도 무안 할 지경이었다. 손님들이 도착한 시간이 마침 점심시간 쯤 되어 교회에 도착을 했고, 점심을 준비한 상을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섯 분의 목사님을 모시고 갔는데 반찬은 야채 볶음 한 접시와 다섯 마리의 생선을 구워 놓은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 손님들을 인솔하여 간 우리 남편이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밥을 어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고 했다. 그 후에 들려진 소식은 선교사가 손님 대접을 엉터리로 하여 중간에서 소개하신 분의 입장이 난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느 날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어 교인집을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몇명의 친척을 포함하여 열 다섯명정도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국그릇 사이즈의 대접에 닭 간장 조림반찬 한 대접과 커다란 밥솥에 가득 차 있는 밥이 전부였다. 나 혼자 먹어도 부족할 것 같은 양의 반찬을 열 다섯명이 나누어 먹고 있었는데 욕심 부리지 않고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양 만을 갖다가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궁금해서 반찬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물으니 충분하다고 했다.

그렇다. 이것이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고, 생활 수준이다. 손가락만한 사이즈의 소금에 절인 생선 한 마리로 수북이 쌓인 밥 한접시를 다 먹을 수 있고, 그것도 형편이 허락하지 않으면 간장을 반찬 삼아 아무런 갈등 없이 감사함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푸짐하게 많은 종류의 음식을 하라고 부탁한 나의 한국적 기준의 생각과 야채 볶음 한 접시와 일인당 한마리 씩 다섯 마리의 생선구이가 다섯명의 손님들이 먹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 이곳 현지인들과의 생각 차이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쯤되니 혼자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 차려진 음식 앞에서 서로의 표정이 어땠을까? 높으신 분들은 나름 대형교회 목사인데 고작 야채볶음과 생선구이로 우리를 대접하다니... 하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고, 최선을 다해 음식을 준비한 현지인 교인들은 차려진 음식을 보고 흡족해 하며 손님들의 얼굴을 주시했을 것을 상상하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필리피노들 속에서 함께 살며, 느끼고 배우는 일상적 문화는 학문적으로 공부하여 아는 문화와는 전혀 다르다. 이들과 함께 살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삶이 이들을 진정으로 알수 있는 길이고, 이들의 문화속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겠다.

선교사로서 이들을 품고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것을 고집 하지 않고, 이들의 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며 이들처럼 되려고 애쓰는 모습일 것 이다. 우리의 문화와 다르다고 이들이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이 이들의 마음을 닫히게 하는 원인인데, 필리핀에서 20여년을 살아도 살면 살수록 더욱 어려운 것이 이들의 문화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현지인들에게 초심으로 돌아가 이것저것 시시콜콜 물으며 한걸음 씩 그들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필자소개

남편 원인규 선교사와 1993년도에 파송받아 현재 필리핀에서 사역중이다. 주 사역으로는 필리피노 선교사 훈련, 카이로스 사역, 파견사역과 교회사역을 하고 있다. 두 딸 찬양, 찬송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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