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인생

번호

222

 

작성자

편미선()

작성일

2015-09-05 20: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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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칼럼 61호(2014년11월23일)

'지지고 볶는다' 는 말을 들으면 대가족 속에서 북적거리며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일곱 형제들과 부모님, 조부모님, 작은댁 식구들까지 매 끼니를 해결하려면 마치 전쟁을 치르는 듯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밥상은 늘 두 개가 차려 지는데 한 상은 어른들의 상으로써 좀 특별한 반찬들이 올라가고 또 하나의 상은 그저 늘 먹는 일상적인 반찬들이다. 동그란 상에 머리를 들이밀며 배고프지 않기 위해 벌이는 밥상 앞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늘 부글거리는 이기심을 용솟음치게 하였다. 이렇게 많은 식구가 아닌 오로지 서너 명의 오붓한 가족이 음식 앞에서 서로 양보하며 여유 있는 식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예쁘게 꾸민 방에서 오직 나 혼자 공주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등등 그 때는 이루어 질 수 없는 현실로 인해 많은 불만이 내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를 포함한 일곱 형제들을 데리고 가까운 해미읍성으로 소풍을 가자고 하셨다. 형제가 많은 것이 남들 보기에 창피하여 따라가고 싶지 않았으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 갔다. 그 소풍장소에 도착하여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아버지의 진행 하에 한사람씩 앞으로 나가 장기자랑을 하고 있는데, 어느 노신사가 우리 아버지 가까이 오시더니 “아이고, 선생님! 아이들 가르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시면서 막걸리를 권하였다.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었는데 형제, 자매 많은 것이 마치 나의 숨겨진 치부를 드러낸 것처럼 창피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었다. 그 때가 아마 나에겐 마지막 가족 소풍이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덧 많은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되고, 어느새 성큼 자라서 부모 곁을 떠난 자식들의 빈 둥지만이 덩그러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이제는 내가 원하면 무슨 음식이든 맛있고 여유롭게 즐기면서 먹을 수 있고, 두 칸의 방을 혼자서 다 차지하고 쓸 수도 있는데 빈 방을 바라보며 떨어져 있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다. 비록 추운 알래스카의 허름한 트레일러 집이었지만, 토끼같이 예쁜 두 딸과 이소룡 닮은 멋진 남편과 네 식구가 옹기종기, 알콩달콩 서로를 의지해 온기를 느끼며 살던 그 시절이 벌써 그리워진다. 어릴 적 그토록 바라고 꿈꾸던 우리만의 오붓한 시절이 드디어 도래했으나 어찌하여 그 어릴 적 북적거리며 지지고 볶던 시절이 이리도 그리운지…….

지금에서야 아버지는 왜 그토록 많은 자식들을 데리고 소풍 가기를 즐겨하셨는지, 또 잘하지도 못하는 자식들의 노래를 하나하나 다 듣고 싶으셨는지, 그렇게도 많은 대 가족을 한집에 모아놓고 북적거리며 살고 싶으셨는지, 그리고 또 엄마는 고된 명절이지만 기쁨으로 음식을 준비하시며 자식들을 기다리시는지, 몸이 건강치 못하시니 농사일을 그만 두시라해도 시절 따라 나오는 햇 수확물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농사일을 계속 하시는지, 검정 비닐을 총 동원하여 일곱 자식들이 좋아하는 각각의 음식을 냉동고에 얼려 놓고 언제든지 꺼내어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고 싶어 하시는지, 그 부모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사역하며 살고 있는 잠발레스 이바지역에 위치한 PCC교회는 포사다스 라는 한 마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 동네에는 아이들이 모여서 놀 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 교회 앞마당이 이 동네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이고 운동장이다. 이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청소년들은 교회를 자기들 집보다 더 편히 드나든다. 배가 고프면 숯불이나 장작을 태워 밥을 해 먹는데, 장작을 패야하고, 팬 장작을 가져다 눈물 콧물 흘리며 부채질을 하여 불을 살려 음식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지고 볶지 않으면 역사를 일으킬 수 없는 현장이다.

가끔씩은 아이들이 남편 선교사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나기도 하는데, 깨어진 가정 속에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에 배고픈 아이들 인지라 꾸중마저도 따뜻함을 느끼는 듯 노여워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들 집보다 교회 청소하기를 더 즐거워할 만큼 교회를 사랑한다. 이들에게 선물이라 함은 청소년들이 모두모여 교회서 하룻밤 자면서 친교하게 하는 것이다. 이 아이들 부모의 불만은 왜 아이들이 항상 교회에서 지내고 싶어 하는지가 불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자기 자녀들의 삶이 변화하기 시작하니 그로 인해 전도되어진 부모도 제법 생겼다.

예수님을 안 믿는 다른 집 아이들 부모는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집에 들어올 시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걱정하게 되지만 우리교회 청소년들의 부모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교회에 오면 자기 자식들이 있고,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관이 따로 없지만, 성경공부 장소로 쓰는 방은 동네 청소년들의 사랑방으로 점령 당한지 이미 오래다. 교회 옆에 붙어있는 우리 집 사택은 잠잘 때만 빼놓고 항상 열려있다. 교인이든 동네 사람이든 누구든지, 언제든지 들어오고 나가고, 가끔씩은 술에 취해 신세한탄을 하염없이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 광경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바로 지지고 볶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문득 나의 삶을 돌아보니 어릴 적 많은 식구들 속에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것이었는데 지금 현재 까지도 선교지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삶이 너무 익숙하고,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많은 청소년들과 그저 반찬 한가지로 머리 맞대고 먹어도 비싼 값 지불하고 먹는 호화로운 뷔페보다도 더 맛있고 그런 교제를 인하여 영과 육이 건강하게 잘 자라가고, 아름답고 풍성함으로 배가 부르다.

이제는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어릴 적 느꼈던 치열함이 아닌,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새 생명을 선물로 부여받은 형제 자매가 기쁨의 향연의 잔치를 베풀고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이곳에서는 지지고, 저곳에서는 볶고 있는 풍성하고 즐거운 상상으로 바뀌었다. 주님 안에서 이렇게 지지고 볶으며 진정한 교제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려고 어린 시절부터 단련 하셨나보다. 지지고 볶는 인생 참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다.

▶ 필자소개

남편 원인규 선교사와 1993년도에 파송받아 현재 필리핀에서 사역중이다. 주 사역으로는 필리피노 선교사 훈련, 카이로스 사역, 파견사역과 교회사역을 하고 있다. 두 딸 찬양, 찬송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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