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라카의 경계초월자, 문쉬 압둘라

번호

222

 

작성자

이지은()

작성일

2013-02-17 16: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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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의 경계초월자, 문쉬 압둘라

이지은 (서강대 동아연구소)

말라야 반도 남쪽에 위치한 유서 깊은 도시 말라카(현지에서는 믈라카Melaka라고 한다)에는 문쉬 압둘라(Munshi Abdullah)라는 거리가 있다. 압둘라인 것을 보면 무슬림인 어떤 이의 이름을 딴 것이 분명한데, 정작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앞에 붙은 문쉬라는 단어다. 문쉬는 선생 또는 스승이라는 의미로, 뛰어난 문필가들에게 주로 붙는 경칭이다. 원래 페르시아어에서 온 말이라고 하니 이슬람권인 말레이시아에 전파되어 쓰인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문쉬라는 경칭을 가장 즐겨 사용했던 것은 인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문쉬 압둘라라는 인물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인도계였다.

압둘라 빈 압둘 카디르(Abdullah bin Abdul Kadir). 압둘 카디르의 아들 압둘라로 태어나 나중에 문필로 유명해지자 문쉬 압둘라로 불린 모양이다. 1796년에 말라카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1854년 메카로 순례를 가던 중 죽었으니, 19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특히 말레이어로 저술한 자서전, 여행기 등의 작품들은 고전 말레이어에서 현대 말레이어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말레이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압둘라는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혈통적으로는 조금 복잡한 가계였다. 증조부는 하드라미 계통의 아랍 상인이었으나, 그는 타밀 무슬림 커뮤니티에 속했고, 그의 가계에는 말라야인(이것도 원래는 믈라유Melayu이다)의 피도 섞여 있었다. 말라야에 토착화된 타밀인 무슬림 커뮤니티인 자위 쁘라나깐(Jawi Peranakan 또는 Jawi Pekan) 사이에서는 같은 무슬림끼리라면 다른 종족집단과의 통혼도 그다지 꺼리지 않았다. 하드라미 아랍인들은 걸프 지역과 인도양 주변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아랍 종족 중 하나로 무역업에 주로 종사했으며, 오늘날도 도시에서는 주로 무역업, 상업이나 환전소 등을 하고 있다. 이들이 아랍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남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주변의 인도양 지역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도 무역 활동의 결과일 것이다. 압둘라의 증조부도 그런 상인들 중 하나로 남인도에 갔고, 현지의 타밀인 무슬림 여성과 결혼하여 정착하였다. 그의 아들들 역시 모두 상업에 종사하며 그 과정에서 차례로 말레이로 이주했다. 그 중에서 당시 말라야를 지배하던 네덜란드의 무역대리인으로 일했던 것이 압둘라의 조부였고, 압둘라의 부친 역시 네덜란드 상관의 관리 자리에 올랐다.

압둘라는 자서전에서 조부와 부친은 타밀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했으며, 압둘라 역시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타밀어로 이야기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국제적인 혈통에 걸맞게 타밀어 뿐 아니라 아랍어, 말레이어를 고루 교육받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뛰어난 언어능력은 그에게 또 다른 세계와의 접촉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는 당시 말라야 지방에 진출해 있던 영국 동인도회사에 고용되어 번역가, 언어교사, 기록관으로 활약했다. 성인이 되어 주로 산 곳은 역시 동인도회사와 깊은 연관이 있는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에서는 수많은 유럽 상인과 여행자들의 어학교사 노릇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역 중개인 일로 수입을 올렸다고 하니, 인도 상인의 피가 그에게 흐르고 있었음은 분명한 모양이다. 그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 선교사들도 있어서, 신약성서를 말레이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은 제국주의 식민 통치자 영국의 수족이 되어 동남아를 보다 효율적으로 지배, 착취할 수 있도록 실무를 떠맡았던 인도인의 전형을 보는 듯도 하다. 동인도회사의 고용인이 되어 착취자에게 봉사한 점이나, 현지인들과 유럽인 상인들 사이의 무역 중개로 이득을 취한 점, 더구나 성서 번역을 통해 기독교 선교를 도왔다는 점도 당시 말라야 사람들의 정서와는 부합하지 않았을 터이다. 그가 남긴 여러 가지 기록들에 대한 훗날의 말라야 민족주의자들의 평가는 이런 이유로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가 식민 통치자들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대로 어쩌면 그는 평생 가까이서 접했던 유럽인들의 생각을 글을 통하여 말레이인들에게 역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그의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어쩌면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측면은 말라야어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과 특히 말라야어를 교육하고 보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중시다. 그에게 있어서 언어란 지식을 쌓는 도구였을 뿐 아니라, 온갖 세속적인 것들의 질서를 잡아주는 '로고스' 자체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그의 '민족주의'는 정치체제를 초월한 문화적인 것이었고, 그 중에서도 언어를 통한 역사성이나 동질적 경험을 강조하기 보다는 언어가 가져오는 질서와 정신작용에 주목하는 메타언어적인 것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는 말라카의 술탄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지배층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친영적, 또는 반민족적인 인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의 말라야어에 대한 애정이 술탄에 대한 충성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서남포럼 뉴스레[터 181호, 2013년1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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