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학혁명기념관 전시실)프랑스 혁명

번호

222

 

작성자

조흥국()

작성일

2004-10-25 15:35:16

추천

0

조회

2089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
- 전시실 <제국주의와 세계사의 혁명들>
- 텍스트 작성자: 조흥국
- 사진 일부 제공

<오리지널 텍스트>
혁명 이전 프랑스 사회는 제1신분인 성직자계급과 제2신분인 귀족계급과 이들과 결탁한 국왕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러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18세기 후반 계몽주의 시대에 점차 증대하고 있었다. 장자크 루소와 같은 사상가는 심지어 백성에 대한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국왕은 백성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많은 프랑스 지식인들은 정치적 및 사회적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미국 독립전쟁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특히 1787-88년간 극심한 흉년으로 심각한 재정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1계급과 제2계급은 국가재정의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고, 이를 당시 프랑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과 수공업자들과 부르주아 등으로 구성된 제3신분에게만 지우려고 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더군다나 귀족계급이 국왕과 단합하여 개혁에 대한 모든 요구를 백지화할 우려가 생기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마침내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시켰다. 세 신분의 대표들로 구성된 국민의회는 8월 4일에 드디어 앙시앵 레짐의 봉건제를 폐지한다는 것을 선언했다.

 

 

no

이름

제                   목

작성일

조회

추천수

99

조흥국

17세기 후반 태국의 중국 및 일본 무역

2005-04-25

1733

0

98

조흥국

17세기 타이 역사 사료 연구

2005-04-25

1894

0

97

조흥국

(서평)동남아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

2005-04-25

1786

0

96

조흥국

세계화와 태국의 시민사회 (1)

2005-01-03

2283

0

95

조흥국

Historical Relations between Korea and Thailand in the Late 14th Century

2004-11-03

1889

0